고향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기만 하다. 산은 높았고, 물은 맑았다. 싱그러운 향기가 사방에 가득했고, 흙에서는 깨끗한 내음의 향취가 올라왔다. 낮은 울타리가 있었다. 손 안 가득 쥔 한 줌의 쌀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고소한 내음이 코 끝으로 올라와 하염없이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바닷소리는 고요했고, 거대한 뻘이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전부였다. 그 곳이 어디인지, 어떤 말을 사용하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든 것이 사흘도 더 된 적에 꾼 꿈처럼 흐릿하게만 남아있었다. 낡아 색바랜 그림 속 풍경을 선명히 기억하라 하는 쪽이 더 편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것은 상상의 여지라도 있으니까.

오랫동안 내 이름은 "렛톤"이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불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오랜 기간 불려진 이름은 이것이었다. 마우쉬, 레톤, 하톤... 나라는 존재가 칭해진 방식은 다양했고, 언제나 바뀌었다. 거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항상 나는 떠돌이 신세였고, 이 배에서 저 배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이리저리 헤메이고 다녔다. 그렇다. 밀항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흐릿한 최초의 기억들을 제한 나의 모든 삶의 기억은 배 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난 바다 위의 꺼림직한 불청객, 한 마리의 쥐새끼일 뿐이었다.

바다 위에서의 가장 오래 된 기억으론, 내가 지금처럼 비참한 꼴을 하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 한참 어린 아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들의 배에 덩그라니 혼자 남겨진 한 명의 어린아이. 극악무도한 해적이 아닌 이상, 충분히 동정을 살 만한 여지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아니면, 그런 불쌍한 어린아이 하나 정도는 챙길 여유가 있는 거상의 배였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됐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나는 이 배에서 저 배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하염없이 떠돌았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밀항으로 승선한 어린아이를 책임지려는 이가 없었다. 도착한 항구에 버려지기도 하고, 이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주점의 여급들이 수소문하여 자신들이 생각한 고향행 배편에 나를 맡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고향으로 도착할 일은 없었다. 내가 가진 고향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단편적이었으니까. 흐릿했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추상적 풍경들을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나이가 찰 수록 내 인생은 점점 바뀌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7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더 동정을 하겠는가, 열댓살은 먹은데다 배 위에서의 삶이 깊숙이 배여 쓸데없이 삭아버린 말썽쟁이를 동정하겠는가. 결국 내가 택한 것은 한마리 쥐새끼로써의 삶 밖엔 없었다. 육지에서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내 자리는 언제나 함선 깊숙한 곳에 위치한 창고 한구석이여만 할 것 같았다. 배 위에서의 나는 노련했고, 재빨랐다. 비록 어린 나이라 하지만 밀항으로 가득한 인생으로 인해 어떠한 배에서든 숨어 지낸다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 발각되는 일도 많았고, 험한 꼴을 수없이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배 위에서 삶을 살아가는 존재였고, 노예처럼 부려먹히기도, 나를 딱하게 여긴 선한 이들의 밑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하며. 어떻게든 그 밑바탕을 확실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여정의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네덜란드였다.


그 때의 내 마지막 이름이 "렛톤"이었다. 쥐라는 명칭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면서 나를 칭하는 독특한 고유명사로 발전한 것이었다. 쥐라는 뜻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냐 묻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다 느끼고 있었다. 난 내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그리고 내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저 당연하다 여겨질 뿐이었다. 물론, 내 옛 이름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젖살 가득한 5살배기가 입던 옷 안쪽에 적힌, 이제는 다 헤어져 제대로 형태도 알아보기 힘든 그 글짜가 내게 큰 의미를 가지진 못했다. 나의 마지막 선장님의 호의로 네덜란드 국적을 얻게 되었을 때에도, 난 주저함 없이 내 이름을 "렛톤"이라 써서 제출했다. 그것이 나였다.

국적 등록일, 9월 2일. 나의 생일, 9월 2일. 선장님이 눈대중으로 적어주신 나이는 17세.
그리고- 언제나 나를 따라 떠돌았던 내 이름. 쥐새끼 - 렛톤. 나의 이름. 나의 존재.

산이 높고 물이 맑던 그 곳에서부터 시작한 나의 삶은, 지금 이 곳 네덜란드에 와서 드디어 출항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지만. 내가 믿을 것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내 몸에 서서히 스며들어온 뱃사람으로써의 삶과 향취들이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내 스스로의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나의 마지막 선장님은 나의 옛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게 알려주셨다. 그 분은 나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가진 분이었고, 그랬기에 그곳의 흔적을 가지고 바다 위를 표류해온 나를 특히나 동정하셨다. 내가 렛톤이라는 이름을 적은 국적 신청서를 그 분께 가져다 드렸을 때, 선장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 옛이름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주셨다. 어째서 그동안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냐 물었을 때, 선장님은 구슬프게 입고리를 올리며 미소만 지으셨다.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그 분에 대한 예의였다. 그 분은 나에게 자신의 배를 물려주셨고, 자신은 망망한 대양 한복판에 작은 나룻배 한척을 띄우곤 수평선을 향해 유유히 노를 저어가셨다. 그 분의 소식을 더 들을 순 없었다.

나의 고향과 나의 옛이름에 미련을 가지진 않았으나, 그에 대한 호기심은 마음 속 깊은 곳 한자리에, 나의 마지막 선장님의 기억과 함께 아리도록 박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 분의 선원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막내였음에도. 나는 불청객이었음에도. 배에 몰래 밀항했던 내가 처음 발견된 그 날부터, 대양 한복판에 그 분을 홀로 보내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내 뒤에 비치는 그 분의 기억을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고향으로 갈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에 아리게 박힌 그 흔적들이 나에게 그리 하라 외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그 땅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네덜란드 공사에 제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국적 신청서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적힌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그 분의 흔적이었다. 이름이라 적혀있는 그 칸에 적혀있는 것은, 나의 옛고향의 언어와, 이제 고향이 되어줄 그곳의 언어, 두가지로 적힌 하나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