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학번이다.
갓 상경한 촌놈이었고 어수룩하기만 했다.

여학생 쪽수가 널널한 미대였으니 학기 초에는 수업 마치고 나면
술 마시러 가거나 나이트 가는 일에 목 메곤 했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겪으며 5월에 접어들면서 '가투'라는 걸 나가게 되었다.

동기 중에 일찍 깨인 놈이 있었는데, 그 놈과 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달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몸은, 솔직한 심정은,
거리에 나가는게 정말 싫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 밖을 나가면 여자애들과 니나노할 수 있는데도,
전철을 타고 종로로 나가게 되면 지옥을 맛봐야 했으니 말이야.

지랄탄이 여기저기 날라다니고,
청바지에 은빛 하이바 차림의 백골단이 쫓아오는
아비규환 속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즐거울리 없잖아.

그 때만 해도 4월 19일(4.19), 5월 1일(메이데이), 5월 9일(민자당 창당일),
5월 18일(5.18), 6월10일(87민중항쟁)로 이어지는 정규 스케쥴과
여름방학 즈음해서 열렸던 전대협, 그리고 훗날 전총련에 이어
한총련 출범식으로 이어지는 큼지막한 집회 + 매 주마다, 별다른 이슈가
없어도 열렸던 교투까지...

최류탄 냄새가 가신 적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학생 개개인은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별개로
그 흐름에 직접 몸을 맡기느냐 마느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지지하지만, 개인의 시간, 스트레스, 압박, 공포, 체력 등등이
소모되는 집회에 참여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학생의 60~70%가 학생운동의 당위성에 긍정하는 정도...
하지만 직접 거리로 나가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른데다 불명확한 기억의 파편이니까 태클은... 좀...

여툰.

거리에 나가려고 하면 하이바 + 방패 + 진압봉 + 방독면으로 무장한 백골/전경이
달려오고, 그에 맞서 시위대 쪽에서는 '전투조'가 앞장서 화염병을 날려대며...
뒤에 남은 아해들은 보도블럭을 깨 전투조에 날라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투박하지.

그 쪽이나 이 쪽이나 조낸 투박했어...

하지만 그런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화염병과 쇠파이프, 최류탄/지랄탄, 곤봉세례가 난무하는
시위문화가 용인되었던 것은(법적인 용인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일반시민'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용인)
권력자의 폭력이 훨씬 더 잔인했기 때문이었다.

물고문, 전기고문이란 말이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행해졌었고, 학교 내에 안기부 직원, 경찰 프락치가
상존하던 시절의 끝물이었으니까.

그러던 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그러니까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
한총련 사태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반전하게 된다.

대통령이 시위진압이 끝난 현장에 몸소 시찰을 나와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이걸로 사람이 맞으면 죽지...'하는 코멘트를
날리는 것으로, 사실상 그 이전까지 지속되어 오던 학생운동은
산소마스크를 떼게 된다.

그 이후로는 니들도 알다시피...
권력자나 피권력자나 앞다투어 '세련됨'을 추구하게 돼.

권력자는 더 이상 예전처럼, 눈에 보이는, 무식한 폭력은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피권력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2 미선/효선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04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집회,
그리고 사학법개정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그 분'들의 촛불집회까지...

'우린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하는 시위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

아. 평화시위를 폄훼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거 절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시위라는 걸 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는 걸 얘길 하는거야.

그에 반해 직접적이면서도 다급한 이해당사자들, 그러니까
농민, 노동자들의 집회에서는 90년대의 문화를 지울 여유가 없었던 까닭에
'세련됨'을 발현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그들은 '폭력시위'의 원흉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난 가끔 이해가 안갈 때가 있었어.
폭력시위라는 말이 타당한 말인가...
물론 죽창으로 전경의 면전을 찌르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데다
진압하는 쪽은 방패로 찍고, 밟고 하는 행위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시위라는 건 상호간에 폭력을 동반하는 행위라는 걸 오감으로
겪었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위화감이라 볼 수 있겠다.)

여하튼. 세상은 바뀌었으니까.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되었다.

저들도 더 이상 물고문, 전기고문을 하지 않았고...
길 가는데 다짜고짜 검문을 하더니 학생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행을 하지 않는데다 '세상은 민주화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대략 평형추가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런데...
저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유행에 민감한지 세련됨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가둬놓고 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압력을 행사하고, 곁가지를 자르면서 밥줄을 끊었다.

'민생', '창조', '융합', '문화', '역사' 등등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뜻하는 단어에
요상한 프레임을 씌워 이제 더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불경한 짓을 벌였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싫은 소리를 하는 게 거슬렸던지
학력고사로 대변되던 '최후의 평가'를 군 제대하고 취직을 하는 단계를 넘어
집을 사고 결혼을 해야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하.

콧구멍에 물 붓기, 욕조에 대가리 쑤셔넣기, 생식기 감전시키기 따위의 무식한 짓거리들을
저지르던 그들은 이제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하고, 라임에 맞춰 힙합을 읊조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를만큼 세련되어졌다는 걸 느낀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장악하지 못해 패했다는 뼈아픈 교훈을 가슴에 안고
불과 10년도 안되어 조낸 병맛 같지만, 나름 효율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기민함을 보란 말이다.

누가누가 세련되었는가...
경쟁을 하다 지쳐버렸달까...

요근래 드는 생각이다만, 저들이야 어떻게 멋을 부리던 간에
예전처럼 무식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문드문 드는 까닭에 지리하고 재미없는 뻘소리 늘어놔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