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편집]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년~1967년》(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

이 문서는 1967년 미국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책임 아래에 18개월에 걸쳐 작성되었으며 총 47권, 약 3,000쪽의 설명과 4,000쪽의 부속 문서로 이루어 져있다.

2. 유출[편집]

이 작업에 참여했던 대니얼 엘즈버그는 처음에는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지지했으나, 보고서 작성이 끝나 갈 무렵에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보고서 가운데 주요 부분을 언론에 유출했다.

1971년 6월 13일뉴욕 타임스는 최고 기밀 문서, 탑 시크릿으로 분류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재기사를 싣기 시작했다.[1]당시 닉슨대통령 재임시 법무부는 이 보고서를 계속 보도한다면 미국의 안보 이익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칠 것이라며 법원에서 공표금지 명령을 얻어 냈다. 

뉴욕 타임스가 법원명령으로 인해 보도가 중지된 상황에서 워싱턴 포스트가 같은 취재원으로부터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전격적으로 후속 보도를 이어나갔다.[2]

3. 폭로[편집]

이후 미 정부는 끊임없이 보도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결국 법원 공판 끝에 미 연방 대법원은 이 보고서를 공표할 권리가 신문사에 있다는 결정을 내렸고(6대3 결정), 이에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들이 폭로됐다.

  • 첫째,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트루먼 정부가 프랑스에 군사 원조를 제공했으므로, 미국은 베트남 사태에 직접 개입했다.

  • 둘째,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키기로 결심했다.

  • 셋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임자에게서 인계받은 제한 전쟁 전략을 대대적인 전쟁 개입정책으로 전환했다.

  • 넷째,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서의 비밀 전쟁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의 개입 정책이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1년 전인 1964년에 공개적인 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 다섯째, 존슨 대통령은 1965년 북베트남 폭격이 남베트남에서 베트콩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정보 조직의 판단을 무시하고 폭격 명령을 내렸다.

     
이는 미국의 對 베트남 정책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고 실태를 알리게 되어 안 그래도 거세던 반전 운동이 더욱더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이 반전 운동은 비단 미국뿐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전개되었는데, 그 결과 시민들의 반전 시위는 미국 정부가 폭격 중지 -> 평화 교섭 개시 -> 미군 철수 -> 전쟁 종결의 순서로 결의를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

https://namu.wiki/w/%ED%8E%9C%ED%83%80%EA%B3%A4%20%ED%8E%98%EC%9D%B4%ED%8D%BC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전략은 친정권 수립에 있었음.

가장 큰 문제는 해당 국가의 친정권 수립을 위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직,간접적으로 제공하게 됨으로 그나라의 내적 갈등이 유발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

힘의 차이가 너무 극단적이면 독재와 genocide로 이어지기 십상이었고, 힘이 비슷해지면 주로 내전의 양상이 나타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베트남전은 미국의 지역 영향력 확대의 기회였다는 것.

하지만 베트남 국내 친정권 기반자체가 급하게 개입하였기에 미미했다는 것.

결국 통킹만 사건으로 국제적 개입 명분은 얻었지만, 정작 베트남 국민들 대상 명분은 얻지 못함.

그걸 질질질 끌다가 결국 펜타곤 페이퍼 사건 터짐.


이후 닉슨 워터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