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면서 병치레를 많이 해서 그런가 젊었을때도 날씨 안 좋으면 이곳저곳 아팠어요


그래도 조심하며 살다보니 한동안은 병원도 안 가고 잘 버텼죠


근데 서른즈음 뇌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확 건강이 확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다니던 직장을 잃고 회복하며 통원치료 다니다가 보니 모아놓은 돈이 없어 궁핍하더군요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부도 해봤었는데 몸이 아프니 쉽지 않았고


가끔 지인들로부터 일자리 소개가 들어왔었지만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 이유와 급격히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그런가


허리 디스크까지 도져서 괜히 민폐만 끼칠까봐 고마운 마음만 받고 늘 못 갔습니다..



결국 나이 먹고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어느날 죄송한 마음에 미용실 가는 돈이라도 아끼려고 간만에 반삭발을 했어요



뭐 어차피 머리카락이랑 수염, 털이란 털은 다 잘 자라는 편이라 걱정 없었죠 (어머니는 싫어하심)


그런데 자르고 나니 문득 모발기부를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계기는 코스튬 플레이어, '피온'이라는 분께서 (팀 CSL)


오버워치의 '솜브라' 코스프레를 위해 모발기부를 하신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진 출처 : http://www.inven.co.kr/board/webzine/2898/1154


저야 머리가 금방 자라서 이발소 가서 빡빡 밀어도 감흥 없이 털털하게 나오는데


저 분은 여자분이신데도 긴머리 댕겅 자른걸 보니 '프로'시구나 라며 살짝 걸크러쉬를 느낌



뭐 여차저차 얘기가 길었지만


나이 먹고 사람 구실 못 하다보니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소아암 환우들에게 모발기부를 하면


'나도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생겼고 그건 곧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면도를 해도 지울 수 없는 짙은 수염자국



(트와이스 - 시그널 활동 때쯤이라 포즈가 저렇네요)



모발기부를 결심하고 처음 맞는 여름은 정말 지옥 같더군요


젊었을적에도 머리 기른적이 있었지만 다듬지도 않고 앞머리까지 다 기르니


숱도 많은데 모발도 굵어서 묶거나 세안밴드로 확 제껴버리지 않으면 못 견디겠더라고요


도대체 김경호, 박완규 같이 머리 긴 록커 분들은 어떻게 견디시는건지 경이로울 따름이더군요 ㄷㄷㄷ



그리고 머리 감고 말리는 것의 노동력이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서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머릿결을 위해 린스까지 꼭 쓰게 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여자애들처럼 열심히 거울을 보며 빗질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가관이었던건 머리가 어중간하게 길어지니 머리끈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만약 머리끈이 없는데 국이나 라면을 먹어야 한다?


머리를 한쪽으로 몰고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잡은채 먹어야했죠;;


의문의 여성스러움 폭발.. OTL



뭐 이래저래 반삭발 후 22개월 정도 지나니 30cm 정도 머리가 길었고


미용실에 양해를 구해서 이쪽저쪽 묶고 모발기부를 위해 잘랐습니다


자른 머리는 지퍼백에 담고 대봉투에 넣어 등기로 보냈습니다



자르고 나니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하더라고요


간만에 짧은 머리로 돌아오니 머리 감는거나 생활 자체가 긴머리에 비해 참으로 편한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소아암 환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스스로에게도 마음에 위안이 많이 되었고


문자로 수호천사님(!)의 모발이 잘 접수 되었다고 왔을때는 정말 기뻤답니다~ *^^*



재미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프린터로 인쇄한거 인증샷 남겨요~

저는 요새 머리가 생머리였는데 길었던거 자르고 나니


상했는지 부드럽지도 않고 살짝 곱슬곱슬거려서 다시 밀까 고민중 입니다~


그럼 모두 건강하시고 곧 다가올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출처 :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