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몇명이나 볼 진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11년동안 살면서 경험한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풀어본다.

이게 맞는 채널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원글이 취미 채널에 있어서 이것도 같은 채널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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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면 살아볼수록 미국은 큰 나라라는 걸 느낀다. 특히 의료 시스템에 있어서 50개 주마다 시스템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주마다 정치 성향도 너무 다르고, 어떤 주는 거의 한국, 아니면 캐나다급으로 진보적이라 주민들이 복지시스템에 대한 열망이 강한데 비해 (보통 동북부 주들이 이렇다), 연방정부가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주지 않으면 'ㅅㅂ 안해주면 우리끼리 복지시스템 만들고 말지' 하는 심정으로 그 주에서만 복지가 '다른 주들에 비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좋은 경우가 있다.

 

난 텍사스주 휴스턴시에 살고 있는데, 여긴 보수적인 주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주로 복지에 있어서는 사막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곳의 마인드는 '우리 주 정부 돈 많으니까 재산세랑 부가가치세만 걷고 소득세는 안 걷을게. 대신 복지는 연방정부에서 명령하는 복지만 시행할 거고 나머지는 늬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봐라.' 에 가깝다. (반대로 캘리포니아나 뉴욕 쪽은 세금 많이 걷어가고, 주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도 상대적으로 빵빵하다고 "들었다." 직접 살아보진 않아서 모른다.)

 

나는 지금껏 미국 생활하는 동안 미네소타주, 조지아주, 테네시주에서 살아봤다. 이 중 미네소타주와 조지아주에서는 유학생으로 생활했고, 테네시주에서는 군인으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미국 의료와 복지시스템과는 많이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사실 아등바등하며 복지 찾아보며 평범하게 산 건 고작 1년밖에 안된다. 작년 연말에 군 전역하고 텍사스주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그나마 작년에 아내가 출산을 하게 되면서, 보낸 시간에 비해 시스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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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학생들이 겪는 의료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댓글들 보니 미국 경험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절반은 교환학생들이나 유학생들인 것 같더라 (느낌상이니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주민부심 부리는 게 아니라, 유학생이라면 유학생활 경험이라고 좀 까고 이야기하자. 그러는 편이 사람들 조금이나마 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일반적인 교환학생들이나 유학생들은 사실 미국 의료의 실상에 대해 잘 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짧은 체류기간이다. 4년 가량의 기간 동안 그 나라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정확한 파악을 할 정도로 알 수 있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학생들이 가는 의료시설이 보통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학교에서는 보통 의학대학병원 및 보건소를 끼고 있고, 학생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이 시설들에 간다. 보통 이런 시설들은 시설도 깔끔하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학생의료보험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진료를 해 주기 때문이다. 이 학생의료보험은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상업의료보험사를 끼지 않고, 이 가입 학생들의 연령대는 보통 평생 가장 건강할 확률이 높은 나이대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며, 디덕터블 등 일반적인 미국 보험들의 특징들(이에 대해서는 하단에서 더 이야기하겠다)을 갖고 있지 않으며, 학비와 함께 대학교 수익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저렴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에 더해 양질의 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학측에서는 딱히 학생의료보험으로 수익을 추구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사례와는 비교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간 유학생들이 '난 $25만 내면 다 치료해주던데? 미국 의료 안좋다는 사람들은 무슨 흰소리야?'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저 뭐라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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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국에서 군생활을 했다. 전역하며 군에서 상이판정을 받고 나와 보훈처 의료보험(VA Health Care) 수령대상자로 선정되었으니, 현역 의료와 퇴역군인 의료 두 가지를 모두 겪어본 입장으로 소감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현역 및 예비역 군인 의료(Tricare)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 정말 좋다. 본인 및 만 21세 미만 (대학교 진학시 만 23세) 부양가족이 무상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사망시 유가족들도 이용할 수 있다 (부양가족 치과진료는 소정의 비용을 받지만, 그래도 민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다). 뭐 그렇다고 퍼스트 클라스 의료라는 환상을 주고 싶진 않고, 그냥 아프면 공짜로 치료해준다는 개념일 뿐이다. 군인의 경우 sick-call이라고 해서 매일 아침 점호/PT 대신 지휘관의 허가를 얻고 부대 내 의무병을 보러 갈 수 있는데, 의무병이 도울 수 없는 문제일 경우 부대 내 클리닉 또는 군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부양가족의 경우 예약 없이는 봐 주지 않고, 일반적인 경우 2주-한 달 사이에 예약 진료를 잡을 수 있다. 덕분에 감기 따위로는 굳이 의사를 만나러 가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응급상황일 경우 응급실에 갈 수는 있지만 일반 대기시간이 3-4시간, 길면 8시간인지라 역시 어지간한 일로는 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인지라 일병 가족보다 대령 가족들에 더욱 굽신거리는 의료진들을 볼 수 있다.

 

퇴역군인 의료의 경우 일반적인 전역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군복무 사유로 상이판정이 나와야 한다. 평이 매우 안좋은데, 조직이 너무 비대하고 비리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솔직히 공짜라서 다니지 돈주고 다니라고 하면 퇴역군인병원 안 간다. 처음 지었을 땐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시설 노후화가 장난이 아니다. 당장 건물 벽에서 내장재 튀어나온 게 보이는 상황이니... 그나마 내가 사는 곳은 대도시라서 괜찮은 편이지만 다른 곳들은 거의 빈민촌급으로 어마어마하게 심한 곳들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 시골 소도시 시설들.

 

게다가 워낙 대기자 리스트가 길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암에 걸렸는데 돈은 없고 퇴역군인 병원에서는 진료 예약이 8개월 후로 잡혀서 진료 기다리다 그냥 죽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문제가 제기되고 법이 개정되어서 30일 이내에 진료예약이 안 잡히면 민간 병원으로 갈 수 있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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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민간 의료보험.

 


(월급명세표. 붉게 네모친 부분이 의료보험료다. 세금은 아니지만 회사가 의료보험사와 계약을 통해 피고용인들에게 제공하는 고용인보험이기 때문에 급여에서 원천징수된다.)

 

난 지금 연봉 한화로 거의 정확히 세전 7천 받으면서 NASA에서 일하고 있다. 의료보험으로는 고용주를 통해 Cigna라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족보험을 들고 있는데 월 61만원 정도 의료보험료를 낸다. 가족보험은 가족 인원이 몇명이든 다 커버가 되고, 납부한 보험료는 소득세 공제가 된다. 이는 미국 기준으로 매우 좋은 의료보험이다. 한국이면 내가 직장인보험료 내고 아내와 딸 모두 피부양자로 등재하면 월 19만원 정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아무리 한국과 미국 물가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월 내는 보험료부터가 세 배 넘게 차이가 난다. 1년이면 500만원 넘는 차이다.

 

(환율 $1.00 = 1,133원 기준)

 

내가 보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시스템의 불투명성, 디덕터블의 존재, 그리고 서로 다른 의료보험 네트워크의 존재.

 

1) 시스템의 불투명성

 

아파서 병원을 가면 병원에서는 그 방문 건에 대해 의료보험사에 클레임을 넣는다.

 


(Explanation of Benefit (EOB). 클레임에 대한 의료보험사의 지급액 결정 내역을 담고 있다.)

 

의료보험사에서 그 클레임을 받으면 병원과 협상에 들어간다. 협상의 결과로 병원에서는 병원비에 대해 할인을 해준다. 그게 위 문서의 Plan Discounts(보험계약할인) 항목이다. 이는 협상의 결과이므로 매번 다를 수 있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방문 전에 이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원이든 보험사이든 방문 이전 전화를 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을 할 뿐이다. 결국 환자는 병원에 갈 때 정확히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 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병원에 가야만 한다. 그리고 의료비가 산정이 되었을 때는 이미 진료를 받은 이후이므로 환자는 지불할 의무를 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이 협상이 환자의 방문 시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많은 경우 (나는 1년에 최소 세 번 이상 겪는 일이다) 방문시 병원측에서 예상하고 환자에게 징수하는 금액보다 의료보험사가 더 많은 금액을 병원에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병원비가 300만원이 들었고, 병원에 80만원을 내고 왔는데, 의료보험사에서 병원에 220만원이 아닌 240만원을 지불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병원에서 환자에게 연락해 20만원을 돌려주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일은 없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 이 사실은 EOB에서밖에 알 수 없다.

 

이런 경우 병원에 연락하여 과지불 사실 확인을 요청하면 병원은 그때서야 환불을 해주곤 한다. 시스템을 이해하고 모든 영수증을 보관해서 병원 징수액, 보험회사 지불액, 그리고 본인 의료비 지출을 모두 비교 및 추적관찰해서 과지불에 대한 환불을 요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눈먼 돈은 모두 환자의 피해액이자 병원의 수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2) 디덕터블(Deductible)의 존재

 

협상의 결과로 최종 의료비가 산정되고 나면 여기서부터는 쉽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디덕터블은 한국식으로 의역하자면 당해선본인부담금 정도가 되겠다. 이는 의료보험 뿐만이 아닌 미국 보험업계 전체의 특징이며, 자동차보험과 주택보험에서도 볼 수 있다. 매년 1월 1일에 초기화되며, 디덕터블에서 설정한 금액을 환자가 선지출하지 않을 경우 의료보험사에서는 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내 의료보험에는 가족 인원당 $3,000.00, 가족 전체 $6,000.00의 디덕터블이 존재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한 해 동안 그 액수를 내가 지출하지 않는다면 의료보험사는 의료비를 한 푼도 내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1년 내내 보험료를 내더라도 말이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우리 가족 전체가 1년 내내 의료비 지출이 하나도 없었는데, 12월 말 즈음에 내가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서 깁스를 하는 바람에 치료비가 $4,000.00이 들었다. 의료보험사에서 병원과 협상해서 이 액수를 $3,000.00으로 줄여줬다. 운이 없게도 다음날 아내가 독감에 걸려서 입원을 했다. 입원비가 $4,300.00이 들었고, 의료보험사에서 역시 병원과 협상해서 이 액수를 $3,000.00으로 줄여줬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이 최악의 경우 나는 2018년 보험료 732만원을 매달 꼬박꼬박 냈으면서도, 보험사에서 돌아오는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한다(뭐 보험사의 병원비 협상 과정을 혜택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는 그 해 732만원의 의료보험료와 660만원의 의료비, 총 합해 거진 1,392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했지만, 우리는 개인 $3,000.00, 가족 $6,000.00의 의료비 지출 액수를 넘기지 못했으므로 보험사에서는 당해 나의 의료비를 한 푼도 내 주지 않는 것이다.

 

가끔 기가 막힌 경우가 있는데, 내가 돈을 냈는데 디덕터블로 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의료보험사 내부의 결정이므로, 환자 입장에서 어째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디덕터블이 없었다고 한다. 도입 당시 보험사의 논리는 '디덕터블이 있으면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자꾸 가는 사람들을 방지하게 되어 선량한 고객들의 보험료가 불필요하게 오르는 것을 막아줍니다.' 였는데... 디덕터블이 도입되고 나서도 보험료는 관계없이 계속 올랐다. 엄청나게.

 

3) 서로 다른 의료보험 네트워크의 존재

 

미국의 의료보험사는 각자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의사 A가 Cigna 의료보험을 받고 UnitedHealthcare 의료보험을 안 받을 수 있는 거고, 의사 B는 그 반대인 경우도 가능하다. 보통의 경우 이는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의 문제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여러 의사를 전전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위에 올렸던 EOB 문서를 다시 한 번 보자.

 


(Explanation of Benefit (EOB). 클레임에 대한 의료보험사의 지급액 결정 내역을 담고 있다.)

 

 

이건 아내가 임신했을 때 받은 EOB이다. 태아심장초음파를 찍고 330만원짜리 청구서가 날아온 내역을 담고 있다.

 

우리 가족은 테네시주에서 텍사스주로 아내가 임신 3개월차일 때 이사했다. 오자마자 했던 일은 좋은 부인과 의사를 찾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육군에서 11월 중순에 전역했고, 회사에서 첫 출근 후 의료보험이 제공되는 것은 다음 해 2월부터라는 것이었다. 두 달 반 동안 우리는 의료보험이 없었다. 명목상 소득이 없으니 메디케이드(주 정부가 제공하는 저소득층 무상의료보험)를 신청하고자 했는데, 전역하기 전까지는 신청자격이 안 되었고 전역하고 나서 신청하자 수속 기간만 한 달이 넘어갔다. 그 동안에는 정말 살얼음 걷는 것처럼 살았다. 필요없는 운전도 삼가고, 괜히 집 나가는 일도 자제했다. 임신 중 검사는 해야 했으니, 부인과를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최소한도로 필요한 피검사 같은 것만 하고 가능한 모든 검진은 임신 5개월차 이후로 미뤘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부인과를 찾았을 때는 부인과 주치의가 내 직장 보험을 받아주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인과에 가기 시작하자마자 위와 같은 청구서가 날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내 병력 중에 심장 관련 질환이 있는데, 부인과 주치의가 이를 보더니 유전 가능성이 있다며 태아 심장초음파를 권한 것이다. 부인과 주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부인과 주치의가 권한 태아 심장전문의가 내 의료보험 네트워크에 속해있지 않은 의사였다는 점이다. 부인과 주치의 입장에서는 외진을 권할 때 그 태아 심장전문의가 가입한 보험사 목록까지 확인할 의무는 없고, 나는 당연히 아내의 부인과 주치의가 외진(referral)을 권하니 그 태아 심장전문의는 같은 의료보험사 네트워크에 가입된 의사일 거라고 지레짐작을 한 것이다. 그렇게 태아 심장초음파를 받고 나니 330만원짜리 청구서가 날아왔다. 심지어 심장초음파 결과는 '태아가 너무 작아 아직 심장질환 여부에 대해 알 수 없음.' 이었다.

 

다른 케이스를 살펴보자.

 


 

440만원짜리 청구서다. 이 케이스는 심지어 할인조차 없다.

 

위는 아내의 출산일에 받은 EOB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자영업자들이다. 심지어 겉모습은 종합병원에 근무하더라도, 병원은 시설 및 공간 대여비를 의사들에게서 받고, 의사들 자체는 자영업자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출산한 병원이 바로 그런 경우이고, 위는 그 때문에 발생한 참사이다. 그리고 설명을 더 읽으면 알겠지만, 이는 미국에서는 응급실과 같은 응급 상황에서 빈발하고 있는 문제이다.

 

아내의 출산에는 여러 사람들이 참여했다. 우리는 제왕절개를 해야 했는데, 내 기억에만 최소 네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부인과 주치의, 수술 집도의, 마취과 전문의, 그리고 간호사 두 명. 그리고 이후 병실에 방문한 소아과 전문의도 청구서에 올라왔다. 다행히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내 의료보험 네트워크에 가입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니었고, 그게 내가 위 EOB를 받게 된 이유다. 나는 이 EOB를 받기 전까지 환자가 직접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들이 의료보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는지 손수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솔직히 아직도 믿기 힘들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참여 인원이 수술 직전에 바뀌는 것에 대해 환자가 손쓸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응급상황이라면 더더욱. (교통사고로 실려와서 의식이 없는데 네트워크에 가입된 의사가 올 때까지 수술을 안 하고 기다리겠다고 할 건가?) 이런 경우에는 그저 의료서비스를 받고 청구서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 액수가 얼마든간에. 목숨을 담보로 잡고 장사를 하는 셈이다.

 

사실 난 다행히도 저 440만원을 내지 않았다. 전전긍긍하며 법적 대처를 할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있었지만, 병원에서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은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 병원에 전화해서 문의해 보니 내게 청구한 금액은 없다고 했고, 난 거기서 더 이상 문제를 들쑤실 생각이 없었다. (물론, 다른 청구서들은 납부해야만 했다.)

 

텍사스 주 정부에는 이러한 경우 구제해주기 위한 부서가 있다고 들었다. 직접 연락해 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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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두서없는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시스템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사견으로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많고, 손볼 곳도 많으며, 부당한 부분도 많지만, 이는 시스템을 뜯어고치기보다는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고(의사가 진료하면서 손해는 안 봐야 할 거 아닌가?) 보험료 부과 형평성을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 지 총체적 난국이나 다름없다.

 

의료 시스템만 본다면, 나는 아마도 미국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출처: https://namu.live/b/live/275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