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조970억원으로 책정한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중 3500억원가량의 금액을 북한과의 철도 및 도로 협력사업에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추진 중인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예산의 구체적인 액수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7일 통일부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을 통해 입수한 ‘남북협력기금 운용계획’ 비공개 세부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내년도 철도·도로 협력 사업에 총 1889억원을 책정했다. 철도 사업에는 1341억원(무상 지원 707억원, 대북 융자 634억원), 도로 사업에는 548억원(무상 지원 95억원, 대북 융자 453억원)을 각각 쓸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통일부는 대북 SOC 사업을 위한 ‘쌈짓돈’도 마련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통일부 관계자가 예산정책처에 ‘남북경협 기반시설 구축(조정재원) 예산으로 편성한 2047억원 중 1637억원을 철도·도로 협력에 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공식적으로 잡힌 철도·도로 예산1889억원에다 조정재원 1637억원을 합치면 전체 철도·도로 예산은 3526억원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남북협력기금 전체 사업비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액수다. 


정부가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이 사업이 남북 공동 프로젝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선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고,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선 “남과 북은 올해 내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야권에선 이런 대규모 예산 편성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대열에서 이탈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17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397호는 ‘철도 및 차량을 사용해 산업용 기계류, 운송수단 및 철강, 여타 금속류의 직·간접적 공급·판매·이전’을 금지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대북 지원의 형태와 관련해 정부가 대북 무상예산은 올해보다 123억원만 늘리고 대북 융자예산을 1000억원가량 증액한 것도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 의원은 “융자는 마치 빌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 퍼주기 비판’을 비켜가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하다”며 “지금까지 북한에 제공하고 돌려받지 못한 돈이 무려 3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경수로 건설 미회수금(2조3063억원), 식량 차관(8230억원), 철도·도로 관련 차관(1494억원), 경공업 원자재 차관(887억원) 등을 아직 북한으로부터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대북 퍼주기 논란을 의식해 무상보단 융자를 크게 늘렸지만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부는 남북경협 기반 사업 예산 4290억원 가운데 남북공유하천 공동이용(6억원), 남북교류협력 민간위탁(28억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82억원) 등 2.7%(117억원)만 공개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비공개로 분류해 국회에 제출했다. 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비공개 예산엔 북한 경제인력 양성(42억원), 남북공동기구 운영(42억원), 경공업 협력(100억원), 금강산관리위원회(10억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이혜훈 국회 예결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는 지난 1일 ‘내년도 예산안 토론회’ 자리에서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집행 내역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심사를 방해하고 있다. 1조원이나 되는 이런 깜깜이 예산은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대북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략을 미리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이고, 비공개 사업 대부분이 계속사업이라 협상의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과거 내역도 공개가 어렵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