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ojoczbWiF0



USS Iowa - Welcome to Los Angeles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건조한 미국 해군 최대 크기의 전함이다. 함급의 이름과 1번함 아이오와의 이름은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따왔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 건조된 함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개수를 받아 CIWS, 토마호크 미사일까지 달리게 되는 전함이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붕괴되면서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 제국이 해전에서 우위를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까지 조약에 남았던 영국과 미국간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16인치 주포, 45,000톤 미만의 전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면서 1990년대까지 현역에 존재했던 고속전함이다.











작성자의 프사 사진이기도 하다.수면의 충격파가 크고 알흠답지 않은가( 뭐 어쩌라구.?!)




총 6척이 계획되었지만 BB-61 USS 아이오와, BB-62 USS 뉴 저지, BB-63 USS 미주리, BB-64 USS 위스콘신 함까지만 건조, 실전에 투입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에 가까워지고 전함에 대한 효용성이 줄어듬에 따라 5번함 BB-65 USS 일리노이, 6번함 BB-66 USS 켄터키 함은 건조가 중단되었다.


덤으로 일리노이와 켄터키에 쓰일 예정이었던 주기관은 둘로 쪼개져서 만재 배수량 54,000톤급 보급함인 새크라멘토급 고속전투보급함 4척의 주기관으로 유용되었다.







3번함인 USS 미주리 함 한쪽 갑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일본측 대표 시게미스 마모르 외상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장소

당시 전쟁에서 그다지 활약하지도 않은 미주리에서 항복식전이 열리는 데에 반대하면서 전쟁에서 활약한 무훈함에서 식전을 열자는 의견도 상당히 있었다.


미주리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다른 전함의 승조원들은 트루먼의 고향이 미주리라서 그런 것이라고 불평했다.


굳이 항복 조인식을 해군 함정에서 한 이유는 미국 해군이 주축이 된 전장이었음에도 전후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된 GHQ의 수장으로 육군 원수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성이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제치고 선출되는 등 해군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사건. 사고 사례.



플레처급 구축함 USS 윌리엄 D. 포터 DD-579 (트롤러시끼)


1번함 아이오와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태우고 있었던 1943년 11월, 플레처급 구축함 윌리엄 D. 포터(DD-579)가 원래대로라면 가상적함인 아이오와에 어뢰를 쏘는 척만 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실수로 실제 어뢰가 든 상태로 발사됨


무선 침묵 상태로 상황을 파악 못 하던 아이오와는 윌리엄 D. 포터가 이 사고를 발광신호로 알리다가 잘못 전달 되었고

결국 다급해진 포터가 무선 침묵을 깨고 어뢰가 발사됐다고 실토하여 그제야 어뢰가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뢰를 피함.(너무 급박하게 신호를 보내느라 승조원이 당황한 것인지, 이 발광신호조차도 첫번째는 '어뢰가 USS 아이오와 반대편으로 발사', 두 번째는 '어뢰가 전속력으로 후진 중'이라고 전혀 알 수 없는 의미로 잘못 보내고 말았다.)


어뢰는 전함 뒤에서 약 3,000야드(약 2.7킬로) 떨어진 곳에서 폭발하였다. (그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뢰를 보고 싶다고 했다.)대열에 돌아온 아이오와는 9문의 16인치 함포를 포터에 겨누고 해명을 요구 포터의 승조원들은 전원 대통령 암살미수 혐의로 헌병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귀항하자마자 무장한 해병대원들에게 포터의 전 승조원들은 대통령 암살미수죄로 전원 구속당했다.

포터의 함장은 어니스트 킹 제독에게 불려가 아군에게 어뢰를 사격한 치명적인 실수와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뢰로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한 것(으응??)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결국 암살 시도는 아니고 실수라는 결론이 나오기는 하는데 가장 책임이 큰 어뢰 담당자가 징역 14년을 선고받는 등의 후폭풍이 일었다. 그러나 징계를 받은 승조원은 없었는데 루즈벨트가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을 사면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함장은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고, 실형을 받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사족 : 윗놈이  많이 이상한 것이다 플레처급 구축함 자체는 잘 빠진놈인데..ㄷㄷ

        플레처급은 대한민국 해군과도 인연이 있다. 그렇다 충무함이다.(응?? 북치고 장구치고)


대한민국 해군첫 번째 구축함으로 1963년 5월 16일 미합중국 해군의 플레처급 구축함 USS 에르벤을 인도받아, 1993년 퇴역하기까지 31년간 한국의 바다를 지켰다.


93년 퇴역 당시 한국은 8척의 울산급 호위함을 동시에 운용하고 있었으므로, 배 자체로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활약한 셈이다. 한국의 첫 번째 전투함인 백두산함6.25 전쟁에서 활약하였던 적이 있으나, 전후 10년이 지나 한국함대가 설립되고 나서도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충무함의 도입은 당시 열악했던 해군에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1968년에는 동급함인 DD-912 서울함, DD-913 부산함이 추가로 도입되었으며, 이들 함정은 72년 알렌 M. 섬너급 구축함기어링급 구축함이 미군으로부터 이양되기 전까지 한국 해군의 기함이었다.






1950년 1월 미주리는 버지니아 주 체서피크 만에서 지정된 수로를 따라 항해하며 음문을 녹음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로를 표시한 부표 중 2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에선 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함장이 함의 방향을 잘못 정하는 바람에 얕은 갯벌에 좌초하고 말았다. 인원과 주요 물자들을 하역시킨 다음 17일 동안 준설과 인양 작업을 한 끝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당시 함장은 무능한 인재는 아니었지만 겨우 구축함급의 지휘 경험만 있었던 사람이었고, 당연히 이후 해임당했다.






1956년 대서양에서 기동 훈련을 하던 도중 구축함 이튼과 충돌해 함수가 대파당했다.

이튼이 조함 실수로 인해 위스콘신 바로 앞을 지나게 되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위스콘신이 그대로 들이받은 것, 이튼은 대파당해서 예인선에 끌려가 간신히 회항하였으며 위스콘신은 자력으로 회항해 미완성된 캔터키의 함수를 잘라다 붙여서 수리를 하였다.






1989년 4월 19일 1번함 아이오와의 주포 사격 훈련 도중 2번 주포탑 중앙 주포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2번 포탑 요원 47명 전원이 사망, 아이오와는 그 후 퇴역 시까지 2번 주포탑이 사용 불능 상태로 지냈다.

사고의 원인은 포탑 요원 전원이 사망한 관계로 현재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포격 전에 시간을 더 달라든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등등의 음성연락이 남아 있어 숙련되지 않은 조작원이 장전이나 발사관련 기기를 잘못 만져서 생긴 사고라는 등의 예측들만 즐비할 뿐이다.


포탑 승조원 중 한 명이 복무 부적응으로 자살하려 벌인 일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었는데,해당 승조원은 동성애자 의혹을 받고 있었고 다른 승조원을 사랑했다가 이를 인정받지 못하자 자살했다는 것.

해당 수병의 유가족이 크게 분노하여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장약 장전중에 압력이 잘못 가해지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져 해당 승조원은 일단 누명을 벗었다.

포탄을 약실로 밀어넣는 밀대가 장약을 짜부러트려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게 실제로 가능하다는게 밝혀져서

현재로서는 이것이 진상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오와 2번 주포탑 폭발사고는 여타 사고처럼 함선이 파손되는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 인권유린 및 해군의 비리가 엮인 큰 사건.




https://namu.wiki/w/%EC%95%84%EC%9D%B4%EC%98%A4%EC%99%80%EA%B8%89%20%EC%A0%84%ED%95%A8


꺼무워키 내용을 요약 해볼려고 했으나 방대해서 포기함.





네이비 필드에서 미쿸 4차 전함으로 나오는 아이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