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고독한 여왕 티르피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보유, 운용했던 비스마르크 자매함.

함선명인 티르피츠는 20세기 초 독일 제2제국에서 빌헬름 2세 제위기에 독일의 해군력 증강을 주도했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비스마르크가 침몰후 완성되었고, 비스마르크급의 설명을 보면 알다시피 뒤떨어진 설계사상등으로 결함투성이었지만, 오랫동안 영국을 성가시게 했었고, 결국 수 차례의 공격을 시도하여 격침시키게 된다.









(비스마르크와 달리 선수부분에 하켄크로이츠 마크가 없다.)





티르피츠는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다음에 완성된 관계로 주요 작전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사실상 연합군 함선을 향해 제대로 포격 한번 해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 근방의 여러 항구들을 전전하는 것만으로 연합국 해군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고, 만약에 티르피츠가 공세적으로 나올 경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과 항공기들이 필요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되니츠 제독과의 일화도 나름 유명한데, 비스마르크의 허무한 손실에 실망한 히틀러는 전함들을 골칫덩이로 여기다가 결국 갈아버릴 것을 명령했고 이를 위해 해군 총사령관에는 잠수함 전문가던 카를 되니츠 제독을 임명했다.


그러나 되니츠는 티르피츠를 갈기는커녕 티르피츠의 억지력을 눈여겨보고 "이거 갈아버릴 돈이 더 많이 든다. 얘들이 살아있기만 해도 가치가 있다."라며 히틀러의 예상과 반대로 히틀러와 다퉜고 결국 담판을 지어서 해군에 대한 추가지원을 약속받고 티르피츠를 지켜냈다.



티르피츠는 1942년부터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서 숨어서 1942년에 2번, 1943년에 1번 제한적인 공세에 동원되는 것외에는 크게 한 일이 없었고, 티르피츠를 구해낸 칼 되니츠도 유보트 작전을 우선시해서 딱히 티르피츠에게는 관심을 많이 쏟지 않았다.


하지만 카를 되니츠의 말처럼 티르피츠의 존재만으로도 연합군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고 소련의 보급줄인 랜드리스 작전에 무지막지하게 차질을 주고 있었다.

결국 미국, 영국은 티르피츠와 유보트 때문에 대부분의 물자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교통망이 빈약한 이란에 하적하여 다시 소련으로 보내거나 상당히 신경쓰이는 일본 함대를 지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하적후 다시 동유럽으로 보내야 했다. 때문에 영국 해군은 각종 티르피츠 격침 작전들을 실행한다.





마침내 1944년 11월 12일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들이 다시 폭격에 나섰고 지난번처럼 기상의 방해도 없고 티르피츠의 연막 장치도 작동되지 않아서 주포와 대공포를 쏘며 저항하였으나 3발의 톨보이 폭탄이 내려꽂혔다.

결국 주포탑 근처 갑판에 톨보이가 명중하면서 티르피츠는 결국 수 분만에 전복하여 함생을 끝마쳤다. 1,900여명의 승조원 중 함장 웨버 대령을 포함한 97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여기서 잠깐 톨보이를 말하자면.









톨 보이
번즈 웰리스가 개발한 12000파운드 관통폭탄.
주로 617 비행대에서 많이 운용하였으며, 유보트 기지나 V2 기지에 대한 공격,
그리고 1944년 11월 12일 전함 티르피츠 폭격 등에서 활약하였다.

영국왕립공군 박물관에서 대여함.





전복된 티르피츠.



원래 티르피츠도 침몰당하기 직전에는 최악의 경우 침몰하더라도 똑바로 가라앉아서 착저하도록 하면 나중에 재수리하거나 고정포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일부러 피오르드 지형을 선택하고 어뢰방지용 그물을 깔았으며, 해저지형도 평탄하고 두꺼운 모래톱을 골랐다. 하지만 명중한 톨보이 3발을 제외한 나머지 지진폭탄이 모래톱과 주변의 바닥에 명중하는 바람에 모래톱과 해저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놓았으며, 모래톱 전체로 봐도 큰 경사가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결국 티르피츠가 가라앉으면서 경사면이 된 모래톱과 충돌하여 옆으로 전복되는 바람에 수리불가상태가 되었으며, 다수의 생존한 승조원들이 탈출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들을 구하려고 용접기까지 동원해서 배 밑바닥을 뚫었지만 너무 두꺼워서 마침내 구멍을 뚫었을 때에는 내부의 승조원들은 대부분 산소 부족으로 사망하였고 비교적 빠르게 구출된 87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격침당하는 당일에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마지막 티르피츠 격침 작전에 랭커스터 폭격기 1대가 격추당했지만 이는 대공포에 의한 것이였다.


독일측이 우연한 목격으로 폭격기의 존재는 알아차렸으나 폭격기들의 목적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폭격기들이 도착하기 30분 전에 티르피츠는 다시 지원을 요청하였고 전투기들이 출격하였으나 티르피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 예전 정박지로 날라가는등 삽질을 하고 있어서 도움은 전혀 안되었다.


이유가 더 어처구니가 없는게 해군이 티르피츠를 이동시키면서 그 위치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아군인 독일 공군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기밀이라는 구실로 서로 공유하지 않는 모습은 많이 본 양상 아닌가?(일본에는 해군과 육군이라는 두 국가가 존재한다. 그 둘의 관계는 전쟁 중인 국가의 군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일본 해군의 전투기 제작을 도왔던 독일인 기술자의 수기중에서.)


결국 티르피츠 전함의 침몰을 막지 못했고.노르웨이 지역의 루프트바페 지휘관은 모든 책임을 뒤짚어쓰고 모가지 처분당했다.


티르피츠에게 노르웨이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북해의 고독한 여왕'. 1번함 비스마르크 전함이 격침당하고 혼자 여러 항구 전전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영국의 신경을 마구 긁었고 당시 독일 해군 최강이자 최대의 전함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맞는 별명이다.









작성자는 비스마르크 보단 텔피츠(아카데미 모형명.)를 여러번 만든 경험때문인지 더 정감이 간다.

타미야 애너멜로 도색후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던 여자사람 친구는 2개나 받아갔다.(자신 이사중에 뽀개졌다고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녀는 이뻤다 흐흑!!) 

간만에 생각나 찾아보니 오잉 가격대가 좀 뛰었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