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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언제부터 미개했냐고 하길래 댓글 달았더니 


자기 할말만 적고 차단시켜버림


자기가 마지막에 댓글 달고 차단시켰으니


내가 댓글 못달고 도망간거처럼 보이게 하려는 속셈인거 같은데 웃기네 ㄷ






저기서 나온


“국민당은 중국에서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오늘의 일이 아니라 몇 년 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 인민의 지식과 교육정도가 구미(歐美) 자본주의 민주국가들처럼 그렇게 높아진 후에야 민주정치를 실현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라는 건 그냥 자기 권력 지키려는 장제스의 속셈임




이를 위해 장제스가 기본적으로 추구한 것은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 대가정'이었다. 장제스는 일본 유학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일본의 초국가주의와 유년 시절에 받았던 전통 교육, 국민당원으로서의 쑨원의 사상 등의 영향을 모두 받았는데 이 사상들의 공통점들은 바로 강력한 권위를 통한 질서의 확립이었다. 장제스는 쑨원의 발언을 언급하여 "중국인은 자유를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으며[5] 지금 필요한 것은 빈곤의 격퇴(와 이를 위한 권위)."라고 주장하였다. 즉, 장제스는 인민의 자유가 사회의 발전에 비례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의회 민주주의가 언젠가 중국에 도입돼야 함은 인정했지만 당대 중국의 상황에는 언감생심이라면서 도입을 거부했고[6] 이 과정에서 헌법 제정을 추구한 쑨커나 다른 지식인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훈정 시기 국민당은 언론과 교육을 국민당이 총괄하고 쑨원의 이론과 삼민주의 사상을 국가 전체의 이데올로기로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그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지도력을 좋아하다 못해 준파시스트화하여 여러 인권 문제를 일으켰다. 장제스를 위한 첩보 / 테러 조직 남의사는 백주 대낮에 반대파 암살이나 고문과 같은 테러를 저지르고 다녔고 CC단도 한 몫 했다. 중국의 강제 수용소는 이미 국민당 시절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국민당 치하에서도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이런데 끌려와서 코렁탕을 먹고 있었다. 이것은 지식인의 반발을 불러오며 이후 국공 내전에서 일부 지식인들이 공산당으로 전향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상 장제스는 진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준-파시스트 급으로 자기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였음


장제스 입장에서 민주주의 도입하면 언젠간 자기 권력도 거세당하는데 하고싶겠음?




중국이 미개해진건


아직까지 자기가 최고다라는 망상인 중화사상에서 못 헤어나온것 





민주주의의 미성숙으로 인한 국민 수준 저하인데




우리나라도 70년대 80년대까진 지금의 중국이나 마찬가지로 낙후되고 국민의식도 떨어졌는데


고성장과 민주주의 발달, 시민 교육을 통해서 이정도의 국민 수준을 가지게 된 거지








댓글차단은 진짜 인벤의 최대 병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