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만난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파편화된 사회를 공감사회로 이끌기 위한 주요한 화두로 ‘20대 남성’과 ‘징병제’를 던졌다. 갈등 해결을 고민하고, 젠더 이슈에 가장 민감하며, 사회 변화에 대한 욕구 수준이 높은 20대의 삶과 가치관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이유다. 권 원장은 1986년 대학생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부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던 중 형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사실을 고발한 당사자다.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소장 등을 지냈고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작년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문제 공론화 이후 출범한 법무부 '성희롱ㆍ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적잖은 20대 남성들은 본인이 남성으로서 혜택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과거의 권위적 남성성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세대”라며 “동시에 자신의 행복과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에 징병으로 인해 어떤 생산적 계획도 갖추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이런 징병 문제의 복합적인 요소에 정직하게 접근하지 않으면서 젠더 갈등만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한 면이 크다”라며 “이제라도 징병제의 총체적 변화와 같은 큰 주제부터 복무 형식의 대대적 변화, 기간의 축소 가능성, 입대 시기의 예측성을 높이는 방안, 여성 참여 방안, 복무 생활을 합리화하는 아이디어 등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최근 국방부가 일과 후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는 등 새로운 생활 방식을 도입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은 잠깐만 뒤처져도 부귀영화를 잃는 게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는 시대를 살아가며 하루하루 막대한 긴장감을 견뎌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대는 ‘국가는 왜 이렇게 내 삶을 힘들게 하나’라는 근원적인 억울함을 갖게 하죠.” 






군 문제를 더 이상 성 평등 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만 여길 게 아니라, 출발점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권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20대 남성의 정권 지지율 하락’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보다 입체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20대 남성의 정권 지지율 하락 원인을 놓고 일각에서 막연히 ‘젠더 문제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자체가 남성 집단의 삶을 너무 얇게 보려는 방관적 태도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댓글과 일베 등의 일부 인터넷 게시물로 과잉 대표되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20대 남성 다수는 보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며, 많은 토론을 하고, 다양한 삶의 가치관과 고민을 가진 채로 최근의 젠더 담론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이 최근 일련의 연구를 통해 분석한 20대 남성의 특성은 이렇다. “기존의 가부장적 사고에 많이 빠진 세대도 아니고, 공정함에 기대가 높고, 능력 있는 여성과 함께 산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세대죠.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해의 폭도 깊고요. 이들도 더 이상 보육이나 가사, 가족 관계에서 고립되고, 돈만 벌어오고, 가족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아버지로 살기 싫어해요. 물론 여러 매체를 통해서는 대변되지 않고 있는 면이죠.”






그는 “여성과 관련한 모든 이슈를 피해자나 보호받아야 할 입장으로만 보면서 주장을 관철할 순 없다”라며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가운데 평등, 공감, 탈 서열, 탈 위계적 감수성을 지닌 20대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때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가부장제 그 자체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강요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왜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또 그 주체로서 가장 큰 희망이 엿보이는 세대가 20대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