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벌어진 스쿨버스 납치 방화극 당시 공포 속에서도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 참사를 막은 이집트계 소년 라미 셰하타(13)의 사례를 계기로 지난 정부가 추진하다 좌절된 이민 2세에 시민권을 주는 법안 '유스 솔리'(Ius Soli·출생지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했다. 셰하타는 사건 당시 버스를 납치해 탑승객 전원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이탈리아 국적자인 세네갈계 운전사(47)의 감시의 눈을 피해 은밀히 휴대전화를 숨긴 뒤 경찰에 전화를 거는 데 성공해 동급생 51명의 목숨을 구한 주인공이다. 그는 석유와 라이터, 칼로 무장한 범인이 학생들로부터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불을 지르려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도 명료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납치된 버스의 위치를 설명함으로써 경찰이 차량 추적에 나서, 탑승자 전원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참사로 끝날뻔한 사건을 '해피 엔딩'으로 이끈 주인공이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이탈리아 이민법에 따라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라미에게 시민권을 주라는 여론이 빗발쳤고, 이에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미와 그를 도와 경찰에 함께 전화한 모로코계 소년 아담 엘 하마미(12)는 24일 밤에는 공영방송 RAI의 인기 토크쇼인 '케 템포 케 파'에 출연해 당시 그들을 구출했던 경찰들과 포옹하고, 자신들도 커서 경찰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등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루빨리 시민권을 받고 싶다는 소망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소년들은 또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친구들 모두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경 이민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는 소년들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라미에게 시민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긴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외국 어린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도록 이민법을 개정하는 방안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유스 솔리' 법안은 이 정부의 의제에 들어 있지 않다. 라미가 법을 바꾸고자 한다면 선거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추후 자신의 이런 발언이 영웅적 행동을 한 13세 소년에게 너무 과한 말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언론이 없는 곳에서 라미와 그의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한편, 지난 정부에서 이민자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즉각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주도했던 중도좌파 민주당은 스쿨버스 납치 사건을 계기로, 폐기된 '유스 솔리' 법안의 재추진을 촉구하며 라미의 지원사격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부모의 국적을 따르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5년 이상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이민자 가정 어린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유스 솔리' 법안을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으나, 강경 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정당들의 반대로 법 제정이 무산됐다. 현행 법에서는 이민 2세는 18세가 된 시점에서야 이탈리아에서의 교육 수준, 사회와의 동화 정도 등을 판단하는 심사를 거쳐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