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암흑기

몽골의 러시아 지배.

칭기스칸으로 시작한 몽골제국은

서진하여 러시아에 이르게 됨

몽골군이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들의 정체도 모르고 막아 보겠다며

벌판으로 나가 전투를 한

러시아 기사들은 전부 전멸했고

벌판에서 안되니 도시에서 항전하자 버티니

저항한 도시는 모두 학살 당하고 초토화 됨



(나무 목책성이 주류였던 러시아 봉건 영주들의 성은

금나라 연경, 호라즘의 사마르칸트, 아랍의 바그다드 조차 

가뿐히 함락하고 불 살랐던 몽골군에겐 말 그대로 껌 씹는 수준이었음)



이때 러시아 최초의 국가이자

북유럽과 비잔틴을 연결하며

교역 도시로 부를 누렸던 유서 깊은 도시

키예프를 시작하여 블라디미르 등

말 그대로 러시아 대공국의 중요 도시는

전부 초토화 되서 사라짐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역은



몽골군이 점령하기도 귀찮고 먼 북부의 작은 도시들 뿐

그게 바로 당시엔 변방의 작은 촌락에 불과 했던

모스크바임



러시아의 대표적인 도시 키예프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수즈달 등 큰 도시와 큰 영주들이

어찌 죽임을 당하고 도시가 학살되었는지 기억하기에

모스크바의 대공은

말 그대로 몽골에 완전히 복종하여 살아 남음

몽골이 정복을 안해도 되는 지역이 되기 위해

북부의 도시들은 지역의 주민 호구명단을 모두 작성해

몽골 칸에게 상납하였고

그 인두세 즉 사람 머릿숫자 만큼 공물을 바쳤으며

모스크바의 대공은 대공으로 즉위하기 전까지

사라이에 있는 몽골 칸의 천막에서 살며

몽골 칸의 말먹이 꾼으로 노비처럼 봉사하며 지내다

칸의 은혜로 돌아와 즉위했음

그 기간이

자그만치 100년

러시아 역사에서 이른바

몽골 따따르의 멍에라 부르는 시기

그 모스크바 공작은 그런 눈물 나는 충성으로

대신 러시아 북부 지역의 군소 도시들로 부터

인두세를 모아서 몽골 칸에게 상납하는 책임자 지위에 올랐고

그 결과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중심도시가 되며 과거 분열 되었던

러시아의 도시들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뭉치게 됨

그 결과

모스크바의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공이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몽골군을 격파하는 사건이 일어남

즉 몽골군은 불패의 불사신도 아니며

러시아인은 영원한 노예가 아니다를 알려줌

참고로

얼마전 동해 바다에 수장 되었다고

금괴 찾는다고 사기치던

러시아 함선 돈스코이 호의 이름이

바로 이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공의 이름을 딴 것임



물론 다시 모스크바는 진압되긴 했지만 

이후 모스크바는 급속한 성장을 시작함

그리고

​(킵차크 몽골 칸의 서한을 찢어 버리는 이반 3세)


모스크바 대공국은

이반 3세 통치시기에 이르려 결국 몽골군을 격파해 몰아 냈으며

(이반 4세, 이반 뇌제)


그 손자 이반 4세는

몽골 따따르를 완전히 축출하고

러시아 지역의 영토를 통일하기에 이름

모스크바 도시를 지배하던 대공은

몽골의 말먹이꾼이 되는 굴욕의 댓가로 얻은

세금징수 책임자 지위를 기반으로

러시아 전 도시들을 통합해

몽골을 몰아냈고

이제 전 러시아를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으니

최초의 차르가 탄생함

(차르의 어원은 케사르 즉 영어의 시저)

러시아의 시황제이자

루스 차르국의 초대황제임

러시아의 차르는

과거 자신을 지배한 몽골족 그 후손

그 잔당을 모조리 격파하고 정복해

러시아 영토로 삼음

이때 마지막 몽골 칸국인 시비르 칸국을 정복하고

본격적인 동진을 시작했으니

우리가 지금 부르는 시베라아의 어원이

바로 이때 정복한 시비르 칸국에서 유래함

자신들을 지배한 칸국을 정복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쪽으로 나아가

18세기에 이르면

마치 과거 칭기스칸 제국이 서진하여

러시아를 정복하러 온것 처럼

러시아가 거꾸로 동진하여

몽골 본토를 정복하는 기염을 토함

한편

또 다른 비극이 있으니

러시아의 시황제인

루스 차르국 초대 차르

이반4세의 다른 이름이

이반 뇌제임

일명 미친 왕

말년에 맛탱이가 가서

지손으로 유일한 아들까지 쳐 죽이고

그 대가 끊어짐

그리고 찾아 온 러시아의 혼란기

이때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폴란드가 공백을 메우며 침략해 옴

​(유럽 최강 기병대 폴란드 윙드 후사르)


유럽 최강 기병대 폴란드 후사르에

지도자도 없이 분열 된 루스 차르국이 상대가 될리가 없고

(동유럽을 석권하고 러시아까지 지배한 전성기 시절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


결국 모스크바는 항복하고

러시아는 폴란드에 지배를 받는 시기를 겪음

사실상 동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강력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

이런 암울한 러시아를 구원한게

(로마노프 왕조의 가문 문장 쌍두 독수리는

비잔틴 제국의 황녀와 결혼한​ 인연?으로

스스로 비잔틴의 후계자란 뜻으로 사용함)


로마노프 가문임

후사 없이 죽은 이반4세 아내 가문으로

계승권을 가지어

새로운 차르로 등극했으니

우리가 아는 러시아 제국이 탄생했으며

로마노프 왕조라 부름

이 왕가를 중심으로 폴란드를 몰아내고

러시아가 독립을 찾고 다시 제국으로 성장함

그렇게 다시 성장을 시작한

러시아제국은

결국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에 이르면

과거 러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한 폴란드를

거꾸로 러시아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고

분할하여 정복하기에 이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의 폴란드 분할)


과거 동유럽의 최강자이자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지배하였던 폴란드는

2번에 걸친 분할로

러시아에 병합되어 거꾸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지도상에서 소멸되어 사라짐.

참고로

폴란드- 러시아의 관계는

한국 - 일본 관계 만큼 험악한데

서로 지배하고 정복한 트라우마로

폴란드는 독립하자 곧 기회라 여기고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으로 혼란과 내전이 터진

러시아에 개입하여 백군을 지원하며 전쟁을 했고

또 그걸 기억하는 러시아는

2차 대전때 히틀러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침략했으며

그 과정에 폴란드가 성장하면 러시아에 위협이라 판단

장차 폴란드의 인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엘리트 지식인과 장교들 2만명을

카틴숲에서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전쟁범죄까지 저지름

아무튼 그렇게 유럽의 강자로 등장한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나폴레옹이란 인물과 전쟁을 시작함

​(나폴레옹의 명성을 최절정에 올려 준 아우스텔리츠 전투)


당시 천재적인 군사운용으로 이름을 날린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했고

아우스텔리츠에서

합스부르크 왕가 오스트리아 제국과

로마노프 왕가 러시아 제국군 연합군을

전부 격파하며 그 천재성과 위력을 다시 알렸음

이 전투를 3명의 황제가 전투했다 하여

삼제 회전이라고 부름

그리고 결국 러시아 제국 본토로 침략을 함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무려 60만이 넘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한 나폴레옹은

러시아 최후 방어선인 스몰렌스크 전투에서도

러시아군을 격파해 버렸고

결국 모스크바는 나폴레옹에게 함락 됨.

근데 나폴레옹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모스크바를 함락하면

러시아가 항복해 올 것이다 여겼는데

러시아 제국은 항복을 안함....

그리고 모스크바에

겨울이 닥침....


그렇게 야전 불패 신화를 자랑하는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러시아 동토에서 증발 시키며 패주를 함

러시아 역사에서 이때

러시아 제국 VS 나폴레옹 제국 전쟁을

조국 전쟁이라 부름

마더 러시아의 힘으로 이겼다 이거임

흔히들 간과하는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이야기 하면

딱 여기까지만 기억함

근데 중요한게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겨울을 만나 병력을 모두 잃고 패주했다

그게 끝이 아님

러시아 제국군은 나폴레옹을 추격하여

바로 프랑스 수도 파리까지 점령했었음

​(알렉산드르 1세와 러시아 군대의 파리 개선문 통과 퍼레이드)


파리를 점령하고

개선문을 지나 입성하는 러시아 군대...

유럽 전역을 정복하고 러시아 정도는 바로 굴복 시킬 기세로

진격해 모스크바까지 점령한 나폴레옹인데

거꾸로 러시아 제국군이

프랑스 수도 파리를 점령한 것

지금도 이 때 역사를

"조국전쟁" 전쟁이라 가르치며

러시아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러시아의 완전한 승리였던 전쟁임

러시아 역사에 가장 빛나는 그 파리 점령

근데 그게 영광과 함께 또한 비참한 러시아의 현실을 깨우치게 한 사건임

이때 나폴레옹을 추격하여 프랑스 파리까지 간

러시아의 청년장교들은

말 그대로 문화충격을 받음

당시 까지 중세시절 처럼 농노제를 운용하며

유럽의 최후진국으로 정교회와 차르의 철권 통치를 절대화 하던

러시아 제국의 청년장교들에게

화려한 파리의 모습과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계약론, 계몽주의 등등

서유럽의 근대 문명 문화의 정수를 보자

러시아 제국이 유럽에서 얼마나 뒤쳐지고

얼마나 한심한 후진국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됨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여

러시아를 바꾸고자 했으니

(제카브리스트의 난)

러시아 귀족 청년 장교들이

제정 러시아의 개혁을 요구하며 일으킨 쿠데타

제카브리스트 난이 일어남

물론 고작 한줌도 안되는 귀족 청년장교들은

바로 진압되어 처형 되었고

관련자들은 죄다

그 유명한 시베리아 유형소로 보내짐

​(시베리아 유배지 생활 판화)


이때 연류된 귀족 청년들은 일 평생을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지내다 죽음을 맞이 했는데

이들이 혼자 간게 아님

같은 귀족 아내, 자식 등등 가서

함께 비극적인 생을 마감함

이게 러시아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이었음

한 다리 건너 서로 알고 연결 되고 아는 친구들이

시베리아 유형소로 보내지고

정당한 그들의 요구는 처참히 묵살 된 광경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쉬킨이 큰 충격을 먹었고

이후 그의 문학 세계에 이때의 영감이 바탕이 되었고

또 문학을 통해 이를 알리기 시작함

바로 100년에 걸쳐 진행 된

러시아 혁명역사의 시작.

한편 제정 러시아는

지금으로 치면 파시즘, 독재 국가의

모범적인 경찰 국가 운영의 표준을 세움

일단 대학에서 법학, 철학, 사회과학은 절대 가르칠 수 없음

그리고 제4부라는 비밀경찰 조직을 창설해

혁명을 계획하는 단체 지식인들은 모조리 잡아 고문해

시베리아로 보내기 시작했고

(참고 이렇게 보내진 수용소 인력으로 지금의 시베리아가 개발되었음

더불어 후대에 등장하는 걸출한 도살자 스탈린도 시베리아 개발에 큰 기여를 함)

일종의 프로파간다 정치선동까지 함

"이 모든게 유태인 때문이다"

히틀러에게 영감을 주는 유태인 인종차별과

인종 혐오사상이 사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최초로 기획되어 사용된 정치기술임

사회체제에 불만이 있고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들에게

증오와 혐오의 대상을 던져 줌으로써

그 분노를 정부가 아닌 유태인에게 돌렸고

그 결과 러시아에서는 중요한 사건 중대한 위기마다

대대적인 유태인 학살이 벌어지게 됨

포그롬이라 부르는 것으로

정부가 선동하고 성난 군중이 실행하는

증오와 혐오의 실천적 광기로 사실상 대놓고 학살임

한편 이런 미친 사회와 국가에서

심지어 어떤 방식으로 비판조차 못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

러시아 문학을 엄청나게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됨

법학, 철학, 사회학 등을 아예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 묘사에 외치고 싶은 철학사상, 사회현상을 담아

유일하게 허용된 탈출구인

문학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니

19세기 황금기 문학이라 불리워 지는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이 탄생함

현실을 그대로 담은

리얼리즘 문학에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을 냉엄하게 비판하는

전무후무한 문학이 등장 한것

우리가 지금도 알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골리, 등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작품이 이 때 만들어짐

지금이야 외국 문학 작품은

영어권 문학이 주류이지만

구한말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 온

외국 문학 작품의 90%는 러시아 문학이었고

실제 세계적으로 그러했음

결국

한줌의 청년들이 러시아를 개혁하자 외친

제카브리스트 난을 시작으로

장장 100년에 걸쳐 진행 된

개혁의 요구는

1905년 1월 혁명에 이어

1917년 2월 혁명으로 드디어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며

그 결실을 얻게 됨

이때 만들어진 과도 민주정부가 카데츠라 불리워지는

입헌 민주정부임

참고로 1905년 혁명의 결과로

러시아제국도 1906년 의회를 만들어

그 이름을 '두마'라 부름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최초로 연설한 장소가

두마 즉 의회임

(*한국의 경우 의회를 국회라 부르는데

이유는 1909년 제정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서

독립국가 정부 성립시 국회를 개설한다라고 명시한

임시 정부 헌법에 의거해 국회라 명명한 것임)

그리고 앞서 전쟁이나 복수의 역사를 보면 알듯

러시아의 특징이 한번 시작하면 말 그대로 끝장을 봄

당시 처음 등장한 새로운 혁명이론인

공산주의 사상을

노동자 계급도 별로 없는

농민이 절대 다수인 후진국 러시아에 가져와

입헌민주 정부를 전복한 공산주의 혁명을

1917년 그해 10월에 일으킴

이게 세계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10월 볼세비키 혁명

솔직히 이게 말이 안되는게

러시아는 노동자 계급도 제대로 구축이 안된 상태였음

때문에 바로 이에 반발하는 적백내전이 터졌고

언제든 이탈 가능한 대다수의 무지한 농민을 붙잡기 위해

1당 독재, 러시아식 정교회 신앙을 공산주의에 넣는

부작용을 탄생 시켰고

그걸 레닌주의라 부르며

이게 전 세계로 퍼저 우리가 아는

지금의 독재 전체주의 지도자 우상 숭배 공산주의 모델이 됨

그런 볼세비키가 적백 내전에 승리하고

소련을 탄생 시켰지만

백군파를 지원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은

소련을 국가로 인정 조차 안했음

1930년대 까지 미승인 국가였고

국제적으로 고립 된 상태에서 진짜 인력을 갈아가며

이를 박박갈아 소련을 재건한 것

때문에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하자

서로 스페인에서 한판 붙은 바 있는

원수임에도 똑같이 서유럽 국가에게 왕따 당하는 처지라

양국의 불가침 조약이 체결 된 것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앞서 이야기 한 소련의 폴란드 침공이 이때의 결과 물임

그런 히틀러가

기적처럼 프랑스를 항복 시키고 서유럽을 제패하자

그 야욕을 드러내어

400만의 대군을 동원해 러시아 침공을 해옴

당시 소련의 지도자는

그루지아의 백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탈린 서기장이었고

그의 전매특허 숙청행위로

수많은 군 장성, 장교들이 이미 갈려 나간 상황이라

개전 초 소련군은 말 그대로 하루, 일주일 단위로

수십만씩 갈려 나가는 참패를 거듭했음

이때 아이러니가

도살자 스탈린의 숙청에 진절머리가 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소련지역의 주민들이

독일군을 환영했고

초반의 승세와 소련 주민들의 배반으로

자칫 러시아가 패전 할 위기도 있었음

근데 문제는

히틀러 역시 스탈린에 뒤쳐지지 않는

미친 도살자였단 것

독일 나치는 소련으로 진격하며

러시아의 넓은 영토에서 슬라브인들 청소한 후

독일인들 삶의 터전으로 삼겠다며

말 그대로 인종청소 전문부대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함

(위 사진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들이

나치에게 학살 당하기 전 구덩이 옆에 기다리고 있는 상황임)

우크라이나 발틱3국 벨로루시 등등

독일군 점령 지역에서 말 그대로 인간 사냥이 자행되어

수백만명이 기계적으로 학살 되었음

그 결과는 빨치산이 결성되어 피의 보복으로

종전까지 독일군을 괴롭히는 것으로 돌아옴

​(스탈린그라드 전투 후 항복한 추축군 포로들 이들은

대부분이 지옥의 행군을 하고 죽었음)


그런 러시아 땅에

수백년 전 나폴레옹이 그러했듯

겨울이 찾아 오고

나폴레옹도 모스크바는 정복했건 만

히틀러는 모스크바도 끝내 점령 못 하고

교착 상태 빠짐

이후 인력을 갈아 넣어 싸운다는게 뭔지

보여준 지옥같은 시가전의 대명사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전세는 역전 되어

소련의 반격이 시작됨.

스탈린 그라드 전투 이후

사실상 독일은 소련을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사라졌고

소련의 베를린 진격이 스타트 한 것

당시 소련이 빡치는게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등

위기 상황 마다

서유럽국가에 제2 전선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전쟁 물자만 지원할 뿐

제2 전선을 개전하지 않아

소련 혼자 고스라니 독일의 공세를 전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음

말 그대로 인력을 갈아서 싸운거라

소련의 인명 손실이 자그만치 2천만명임

이때 너무도 많은 남자들이 죽어

지금도 이들 지역은 남녀 성비가 복구 안되는 지경

그러다 소련이 역전하고 베를린 진격이 본격화 되자

그때서야 시작한게

우리가 2차대전의 시작과 끝이라고 기억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러시아인들은 지금도

사실상 자신들이 혼자 독일을 상대했다고 여김

​(소련의 베를린 함락 제국의사당 깃발)

그리고 결국에는

언제나 그러했듯

러시아가 자신들을 침략한 국가의 수도를 정복함

베를린에 소련 국기를 거는 장면은

지금도 베를린 함락의 가장 상징적 사진

러시아인들은

나폴레옹과 싸운 전쟁을

"조국전쟁"

히틀러와 싸운 전쟁을

"대조국전쟁"

이라고 부름

전부 마더 러시아의 힘으로 이겼다 이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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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무지 길었는데

요약하면 러시아의 역사는

한번 당한 것은 끝장을 본다! 의 역사임

그리고 그 시간이 10년이 걸리던 100년이 걸리던

당한 것 이상을 복수해서 결국에는

러시아가 언젠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음

이런 러시아 역사가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함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라는 국가에 자부심이

종교적 영향과 함께 매우 높으며

일종의 자신들은 특별한 국가란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음

러시아 땅 어머니가 자신들을 언제나 보우하신다!


이름하야~


"마더 러시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