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피 시장과 까자끄 인들)


16~17세기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성장한

러시아인들은 1천년간 자신들을 동쪽에서 괴롭히던


동방의 유목민들을 마침내 정복하였고


이어서 마지막 몽골 칸국인

시비르 칸 국을 정벌하며 동쪽으로 나아 갈 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으로 수출할 모피를 찾아 시베리아 탐험에 나서게 됩니다.

​(강을 따라 이동하며 주요 이동 거점에 정착지를 만들며

시베리아 지역을 확장해 가는 방식입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 방식은

모스크바 주변의 볼가강을 시작으로

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이동하며 주요 거점을 만들어 정착을 하였고

그렇게 만든 도시를 따라 길을 만들어 모피를 수송하며

영토를 확장해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장장 100년에 걸친 탐험으로

모스크바에서 시작한 이 확장은 17세기에 이르면

극동 청나라 땅 지금의 흑룡강 유역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역

즉 만주 북부 지역까지 오게 된 것이죠

당시 중국은 청나라 였습니다.

  


​(스스로 불패의 황제라 불렀던 강희제)


그것도 강희제라는 희대의 걸출한 황제가 즉위하던

동아시아 최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이었고

마지막 유목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준가르 부를 박살 내는 전쟁을 하던 중이었죠

청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준가르 전쟁이 한창이고

러시아라는 이상한 조무라기 야만족? 들에게

신경 쓸 상황은 아니지만

이들이 침범한 만주 지역은 청나라의 조상인

만주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방치할 수도 없는 지역입니다.

때문에 군대를 보내 이들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병자호란으로 항복한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죠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나선정벌입니다.


​(나선 정벌 당시 조선군 무장

효종이 북벌한다고 병력을 새로 키웠는데

엉뚱하게 청나라를 공격하는게 아니라

청나라를 도와서 러시아를 공격하는데 썼죠)


(알바진 요새를 다굴빵 쳐서 작살내는

청나라- 조선군 연합군)


청나라 군대와 조선군대로 이뤄진 연합군은

우수한 화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탐험가 이주민들이 세운 흑룡강과 극동 지역

각 요새들을 공격하여

그야말로 박살을 내어 버립니다.

알바진 요새의 함락을 기점으로 사실상

러시아가 완패를 하게 되죠

하지만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듣보잡 러시아와 분쟁을 지속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준가르 부와 전쟁이 시급한 상황에서

단지 후방을 정리한 것에 불과 했거든요

결국 양국간 최초의 조약을 맺게 되죠



그리하여 체결된 것이


네르친스크 조약입니다


양국간 언어적 문제도 있었지만

 

양국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러시아 입장

: 극동 진출에서 노력한 흑룡강(아무르강) 유역의

다수 교두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 문제도 발생하였고

흑룡강(아무르강) 유역에서 사실상 청나라에 발렸으니

양보하며 최대한 이익을 얻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하자

*청나라 입장

: 어서 준가르부도 제압해야 하고

그냥 시끄러운 북방 문제를 이 참에 해결하자


때 청나라는 무력을 앞세워 첫 회담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합니다


" 청나라는 몽골 원나라를 계승한 나라다

바이칼호랑 레나강 동쪽 지역은 다 청나라 땅임"


러시아 입장에서 그동안 시베리아에 확보한

모피 거점, 요새를 전부 내어주는 것임으로


용납될 수 없는 조건이었고

필사적인 반대로 몇 차례 결렬 끝에

러시아가 최대한 양보하고

청나라가 자비를 베푸는 형식으로 

청나라와 러시아간 국경선이 성립하게 됩니다.

청나라 입장에서 보면

조약의 전반 조건에서 목적은


현재 전쟁 중인 준가르 부를 제압하기 위해

북방을 안정 시키는게 중요하였을 뿐


솔까말  

흑룡강이던 바이칼 호던

북방의 사람도 안사는 춥고 외진 땅으로


청나라 관민이 거주하는 지역도아니고

사실 애초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 것도

 

"바이칼호" ?

쓸모없는 지역이고


"레나강 ?

이런 강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말 그대로

그냥 던진 말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러시아측도 지리를

자세히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다만 러시아의 경우 흑룡강 주변이 아니라

바이칼 호 주변까지 내어주게 되면

그동안 피땀 흘려 개척한

기존 점령지 주변 구축한 광산, 소금호, 모피산지 등

너무 잃는게 많았음으로


허용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였습니다.


물론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강희제가 통치하는 청나라가

사실상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무력 제압하며

국경을 확정한 것이었음으로

사실 청나라가 강경하게 나갔으면


조약의 방식과

영토의 선이 어찌되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북방의 러시아인들과의 소소한 국경선 분쟁 보다는

청나라 강희제는 안정 시급했음으로


대충 마무리 짖고

이로써 최초의 중국 - 러시아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경선으로 말이죠

이후 러시아는 보다 동진하여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개막장이 되자

이때 상실한 북만주 지역의 거점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나아가 북경조약으로 연해주도 먹게 되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는 현대 러시아의 극동지방 국경의 형태는


대략 이때 확정됩니다.


러시아가 향후 극동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것도

바로 이때의 조약으로 극동까지 영토가 인정되었기에

가능한 선택지가 된 것이죠

 

하지만 잠시 돌아가 짚어 볼 것이

네르친스크 조약 첫 회담에서 양국이 모두 다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청나라 측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막 던졌던 말


" 바이칼 호와 레나강 동쪽은 청나라 영토다!" 했을 때

실제 청나라가 조금만 더 의지가 있다면 관철 되었을

그 레나강 동쪽

레나강이

어떤 강이었냐면........


시베리아를 가로 질러

북극으로 가는 엄청난 강이었습니다..


레나강 동쪽 = 시베리아 전체.



네. 청나라가


그날 걍 러시아 가져라~ 하고

포기 한 영토가 시베리아 전체였습니다


회담 첫날의 선택으로 역사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