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자지(金自知, 1367~143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조선 개국공신이며 태종~세종에 걸쳐 언관과 재상을 역임했으며, 한문이 뛰어나고 음양·천문·지리·의약 등에 통달 했다. 대사헌 재직 시에는 방자한 세도 공신들을 탄핵하러 5번이나 상소를 올려 당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 왕자지(王字之, 1066~1122)
내시 출신으로 윤관의 북방개척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으며,  1108년(예종 3년)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어 윤관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휘하에서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에 침입한 여진족을 격퇴하였다. 또한 송나라에 하례사로 파견되었다가 송나라 휘종에게 대성아악(大晟雅樂)을 전수받아 고려에 전파하였으며 이는 문묘제례악의 시초가 되었다.





碧梧(벽오) 李時發(이시발) 墓(묘)

3. 이시발(李時發, 1569~1626)
조선 중기의 문신. 20세의 나이에 급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했으며 이항복의 추천으로 공을 인정받고, 류성룡을 도와 왜군을 무찔렀다. 이후 이몽학의 난(1596), 정유재란(1597) 등에서 공을 세워 1604년(선조 37) 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 인조반정 후 '이괄의 난'을 진압했으며 오랜 실무 경험으로 호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해 훗날 병자호란의 중심이 되는 남한산성을 보수 중 병사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