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를 안하는 것은 기술 탈취 때문입니다. 2G·3G 기지국 장비를 개발해 공급했는데, 같은 방법으로 두번을 당했습니다. 4G(LTE) 도입 이후엔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김덕용 케이엠더블유(KMW) 회장의 말이다. KMW는 필터와 안테나를 기반으로 기지국 신호 송수신 부품과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글로벌 통신장비업체들을 다 고객사로 뒀다. 유독 중국 화웨이와 거래가 없다.

화웨이가 누구인가. 내로라하며 글로벌 통신장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회사다. 통신부품업체라면 이 회사와 선을 놓으려고 안달한다. 그런데 김덕용 회장은 "거래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두 회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덕용회장에 따르면 KMW와 화웨이의 인연은 2G 시대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화웨이는 무선통신 기술이 없었다. 단말기와 유심을 분리하는 GSM 방식으로 2G를 도입하려 했던 화웨이는 무선전파수신처리칩(RF) 부품 및 중계기 전문업체인 KMW에 거래를 요청했다. 원천 기술을 가진 KMW와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려는 화웨이는 최고의 파트너로 손색이 없었다.

김 회장은 "화웨이와 처음 거래를 튼 당시엔 제품 개발을 위한 인력 교류와 소통이 원활했다"며 "납품 물량도 꾸준히 증가해 전체 납품 비중의 30%를 화웨이가 차지했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협업 강화 차원에서 엔지니어 여럿을 KMW에 파견했다. 화웨이 엔지니어는 제품 개발을 위해 3개월 이상을 KMW 직원들과 함께 지냈다. 김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화웨이는 KMW 기술을 속성코스로 배워갔다.

화웨이와 거래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어느날, 김 회장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화웨이가 KMW와 똑같은 기술을 개발했으며 중국 내 통신 장비 제조업체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위탁생산(OEM)으로 납품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또 화웨이가 KMW와 거래도 단칼에 끊었다. 김 회장은 대기업의 기술 탈취 문제가 자신의 일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거래가 중단될 줄 모르고 생산해놓은 많은 양의 통신 장비를 납품할 곳이 없었다"며 "반값이면 사겠다는 화웨이 제안에 ‘울며 겨자먹기’로 넘겼다"고 말했다.

3G 상용화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이 됐다. 화웨이가 KMW에 다시 한번 3G 통신장비 개발 의뢰 및 공급을 제안했다. 당장 매출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또 두번이나 속겠나 싶어 김 회장은 화웨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2G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