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장군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에서 2성 장군으로서 독립 운동.


해방 후 준장 임관


6.25가 발발하자 병력 절반을 수습하여


한강 방어선 전투 펼치심. 7일이나 막아냄.


그러나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는 도중 병력 상당 수가 손실되어서


이걸 빌미로 좌천됨.





전후엔 육군 중장까지 달고 예편.


5.16 이후 박정희가 민정 이양 안 하자 반발하여 박정희와 대립함.




국민당군 시절 별 두개, 국군 별 세개 합쳐서 오성장군이라고 불리셨음.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전 군인정치인이다.

1898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출생하였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 창군에 참가했고, 6.25 전쟁 초반 기적을 일으켰다.[1] 

광복 당시 중국군, 일본군, 광복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집단군 참모장, 사단장을 역임하여 대부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경험한 장성급 장교였으며, 중국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학습한 인물이다. 이와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은 일본육군대학출신이고 여단장 지휘경험이 있는 홍사익 중장 정도다. 단순히 군사지휘경험만으로 따진다면 김석원[2] 대좌(연대장 경험)를 예로 들 수 있다. 


[1]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업적이다. 와해된 사단의 상당수를 수습하고 재정비했으며, 성공적으로 지연작전을 지휘하여 북한군의 남침 속도를 늦췄다. 괜히 백선엽이 "이분이 없었다면 적화통일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이는 국방부 전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사에서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다.

-나무위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