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번성(樊城)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조공(曹公-조조)이 이제 막 하북을 평정했으니 제갈량은 형주가 그 다음차례로 적을 맞이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유표는 성정이 굼뜨고(緩) 군사(軍事)에 밝지 못하니 이에 제갈량은 북쪽으로 가서 유비를 만났다. 

유비는 제갈량과 교분이 없고 또 그의 나이가 어리므로 여러 유생 중 한 명으로 짐작하고 그를 대접했다. 모임이 끝난 후 뭇 빈객들이 모두 떠났으나 제갈량은 홀로 남아 있었는데, 유비 또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유비는 평소 결모(結毦-짐승털이나 새깃으로 장식품을 짬)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때마침 어떤 이가 유비에게 소꼬리 털을 주었으므로 직접 손으로 짜고 있었다. 이에 제갈량이 진언했다, 

"명장군(明將軍)께서 또한 원대한 뜻이 있다고 하더니 다만 결모(結毦) 하는 것이었습니까!"

유비는 제갈량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이에 짜던 것을 내던지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내 잠시 근심을 잊으려던 것뿐이오."

그러자 제갈량이 말했다, 

"장군께서 헤아리기에 유진남(劉鎭南-진남장군 유표)을 조공에게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유비가 말했다, 

"미치지 못하오."

제갈량이 또 말했다, 

"장군 스스로는 어떻습니까?"

유비가 말했다, 

"마찬가지요."

제갈량이 말했다, 

"지금 모두 미치지 못하는데다, 장군의 군사는 수천 명을 넘지 못하니, 이 군사로 적을 기다리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유비가 말했다, 

“나 또한 이를 근심하고 있소. 어찌해야 되겠소?” 

제갈량이 말했다, 

"지금 형주에 백성이 적은 게 아니고 호적에 실린 자가 적을 뿐이며 (이를 기초로) 평소대로 발조(發調-인력, 물자 등을 거둠)하니 인심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남(鎭南-유표)께 말해 국(國) 중의 유호(遊戶)를 모두 올려 충실히 하면 이로써 군사들을 늘릴 수 있습니다."

유비가 이 계책에 따르니 마침내 그 무리가 강성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유비는 제갈량이 영략(英略-뛰어난 지략)을 갖추었음을 알고 그를 상객으로 예우했다. 구주춘추(九州春秋)의 말이 또한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