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자원회수시설에서 만든 재활용 보도블록. [서울시 공문 캡쳐]
재활용 보도블록을 사적으로 주택공사에 사용했다가 강등 처분을 당한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이 이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1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2017년 서울시 한 구청 과장으로 있던 A씨는 같은 구청 팀장으로부터 "서울시가 재활용 보도블록의 보관 및 폐기 비용으로 큰 어려움 겪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서울시에 재활용 보도블록을 무상으로 공급해 달라고 신청했다. 서울시는 자원회수시설에서 폐기물 소각제를 재활용해 보도블록을 만들어 공공이용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당 보도블록은 공유재산법상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해 관리ㆍ처분해야 한다.

해당 팀장은 서울시에 공문을 보냈고 서울시는 재활용 보도블록 4만장을 구청에 무상 공급했다. A씨는 이 보도블록 중 2만6280장을 처가집 벽체 공사와 마당 공사에 썼다. A씨는 공사 과정에서 허위로 출장 처리를 한 다음 근무지를 이탈해 공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A씨가 공유재산법을 위반해 재활용 보도블록을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허위로 출장 처리를 한 사실 등을 인정해 A씨에게 중징계와 2배의 징계부가금을 내려야 한다고 정했다. 이에 따라 강등 처분과 294만3350원의 징계부가금 부과 처분을 받은 A씨는 소청심사위에 불복 청구를 했지만 기각되자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 “사적으로 써도 되는 줄 알았다”
서울시에서 각 구청에 보내는 재활용 보도블록 수요 조사 공문에 나오는 보도블록 시공 사례 [서울시 공문 캡쳐]
A씨는 자신에게 내려진 강등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보도블록을 신청하는 구청 직원에게 ”사적으로 주택 공사하는 데 쓸 것“이라고 미리 알리기까지 했고 재활용 보도블록을 ‘재산적 가치가 없는 건설폐기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한 점이나 구청에서 서울시에 보도블록 요청을 한 공문 내용에 비춰보면 A씨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당 구청에서는 당시 서울시에 두 차례 공문을 보내 각 4만장씩 보도블록을 신청했는데 두 번째 공문을 보낼 때는 A씨가 최종 결재권자로 직접 공문을 결재하기도 했다.

A씨가 결재한 공문에는 "소규모 공동주택 단지 내 보도블록 유지ㆍ관리를 위해 보도블록 사용"이라고 사용 목적이 적혀 있었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A씨가 공문을 결재하며 보도블록을 공공용도로 사용해야 하고 개인 주택 공사 자재로 쓰는 등 사적으로 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사적으로 쓸 수 있다고 믿었다면 개인 자격으로 신청했으면 되는데 굳이 구청의 공식 공문을 통해 보도블록을 받은 점도 지적했다.

A씨는 징계처분과 별도로 형사처벌도 받았다. 업무상횡령죄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A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에선 A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행정법원 3부(재판장 박성규)는 "공용물품인 재활용 보도블록을 공공용도로 쓸 것처럼 신청한 다음 주택 공사에 개인적으로 쓴 점에서 잘못이 가볍지 않고 횡령 액수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