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hiopia  햇볕에 그을린  남자들의  땅 !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침략군에 부당하게 공격 당한 나라가 있다면
다른 나라를 도와줘야 한다'는
그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에
의해 우리나라에 파병된 아프리카 유일의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 황제가 우라나라에 부대를 보내고
강뉴부대가 목숨을 걸고 우리를 도와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1935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침공을 당했고
당시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에티오피아인 27만 명이 숨졌고,
나라까지 빼았겼다고 해요.
하지만 이들은 계속 투쟁했고, 1941년
기적적으로 승리해 결국 이탈리아를 몰아내게 됩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받지 못한
설움을 잘 아는 셀라시에 황제는
1953년 UN의 파병 요청을 받자
흔쾌히 우리나라에 병력을
보냈다고 합니다. 황제는 황실 근위대를 포함해
6,000명이 넘는 인원을 파병했습니다.

파병 군인들께 더욱 감사한 일은 강뉴부대원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래 설명에도 나오겠지만,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지고 처참한 우리나의 광경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원을 세워 몇 년 동안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보육원 운영과
피해 복구에 힘써 주었다고 합니다.

일부 부대원은 월급을 모두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조금 떼어 전쟁
고아들의 생활비에 보탰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휴전선 경비 임무를 위해
두 개 대대는 병력을 파견하면서
끝까지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ㅡ  제가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6.25를 기념하기 위한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고,
그 이후에는 '따뜻한 하루'라는
NGO 단체에서 메일로 보내주는 좋은 글을 통해
다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그 분들에 대한 소개에 머물지 않고
어렵게 사시는
그 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서 감사했고,

메일을 통해 그 당신 참전군인 분들에 대한 소식을
간간히 접할 수 있어 또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참전한 국가가
63개국(2012년 5월 공개)이나 되고
많은 분들이 전쟁에 참전해 숭고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하셨는데,

많은 국가와 참전용사 중에서도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원 분들은
귀국하신 뒤 74년 군사 쿠테타로 인해
왕정이 무너지고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그분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몰수하고,

일하고 있던 직장에서 퇴출시키는 등
파병 병사들을 차별하고
빈곤한 환경으로 내몰았다고 합니다.

핍박을 견디지 못한 파병 병사들은
파병 사실과 이름을 숨기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빈곤 지역에 모여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1년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긴 했으나,
아직까지 파병 병사분들의 가족은
'Korea Village'에 거주하고 있으며,
핍박에 뿔뿔이 흩어진 파병
용사들은 아직까지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강뉴부대원분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따뜻한 하루'라는 NGO 단체에서
메일로 보내주는 글귀 중에서 강뉴부대원 분들에
대한 사연입니다.

먼 이국땅의 평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것만...
전쟁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자비한 핍박과
극심한 가난이었습니다.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에티오피아는
7년 간의 계속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이로 인해 경제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멩게스투의 쿠테타로 인해
공산국가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싸우겠다고 스스로 지원했던 참전용사들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고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어떤 참전용사들은 월급을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부대 안에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만들어
전쟁고아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줬다고 합니다.

강뉴부대원들은 가족을 뒤로 한 채 이름도 모르는
나라로 목숨 바쳐 싸우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누구 한 명 강제로 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마다의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은 같은 곳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형제가 전쟁터로 향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Desta와 Mekonen, 자신들의 조국
에티오피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생각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집단안보를 실천하기 위해
황제근위병이란 멋진 자리도 버리고,

만류하는 가족들까지 뒤로한 채 죽음이 기다리는
땅을 향해 형제가 뜻을 같이한 것입니다.

64년이 지난 바래진 사진 뒤에 암할릭어의 친필로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열악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생전 처음 겪는 눈이라는 물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으나,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Mekonen씨는 지금 소지하고 있는
다 바래진 사진을 볼 때마다,

6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추위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떠난 전쟁터에서
형 Desta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습니다.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정말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ㅡ  본래는 그리스어로 ‘햇볕에 그을린 남자들의 땅’
이라는 뜻. 역사적으로는 막연히
나일 강 상류의 누비아 지방,
즉 제1급류에서 상류지역을 가리키는 말.

중심지는 고대이집트 인들은 카슈(Kash),
『구약성서』에서는 쿠슈라 불리운 지방.
고대이집트 제25왕조
(소위 에티오피아 왕조, B.C. 750경~ B.C. 656경)
는 이 지방출신이다.
이 고대용어는 현재 에티오피아와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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