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22일 도쿄에서 열린 일왕의 즉위 선언 행사에서는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는 나루히토 일왕의 발언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전후 세대로는 처음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이 부친 아키히토(明仁) 일왕에 이어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과 헌법 준수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패전 74년이 지난 일본 사회에서 전쟁의 참화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면서 헌법을 개정해 일본도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가운데 나온 메시지다. 아키히토·나루히토 부자가 그간 보여준 행보로 인해 평화에 대한 이들의 염원은 간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1933년생인 아키히토 상왕은 유년 시절에 전쟁을 겪었으며 일찍부터 참화를 겪은 지역을 도는 이른바 '위령의 여행'을 반복했다. 왕세자 시절인 1975년 아키히토 부부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왕실의 전쟁 책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수 미터(m) 앞에 화염병을 내던지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오키나와를 반복해 찾아갔다. 이들은 2005년 미국령 사이판섬에서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하기도 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각지를 돌며 전쟁의 역사를 되새겨온 나루히토 일왕 역시 평화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NHK에 따르면 나루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인 2001년 "전쟁의 비참함이나 평화의 소중함에 관해"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 부부에게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었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전쟁이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22일 일왕이 내놓은 메시지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왕위 교체를 개헌을 위한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이달 4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레이와(令和·2019년 5월부터 사용된 일본의 연호) 시대에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함께 추진해보지 않겠냐. 그 길잡이가 헌법"이라며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그간 일본 헌법이 제정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와중에 이뤄진 일왕 교체와 연호 변경이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을 부각하는 재료가 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국 사절과 아베 총리의 외교를 강조하는 등 일련의 행사를 정권의 지지율을 올리는 소재로도 활용하고 있다. 태풍 피해로 늦추기는 했으나 일본 정부는 다음 달 10일 나루히토 일왕의 퍼레이드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즉위 행사를 계기로 아베 총리가 각국 대표와 회담하는 것을 일종의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관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 일본에 대한 각국 요인의 이해를 한층 심화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제사회와 손을 잡고 여러 과제 해결을 위해 대응하는 우리나라(일본)의 생각을 공유하는 좋은 기회"라고 21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