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 오이갤 눈팅러에서 댓글만 달다가 처음 글을 써보네요.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가진 법률 지식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 글에서 쓰는 자료는 대부분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 보도자료를 참조할 것입니다.

이번에 판결이 난 사건인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송을 알기 위해서는 민법에서 가족관계를 규정한 조문들을 알아야합니다.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 추정)
1항.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로 추정한다.
민법 제846조(자의 친생부인)
부부의 일방은 제844조의 경우에 그 자가 친생자임을 부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민법 제847조(친생부인의 소)
1항. 친생부인의 소는 부 또는 처가 다른 일방 또는 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2년내에 이를 제기하여야 한다.
민법 제865조(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친생관계존부확인의 소)
1항.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와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우선 844조는 친생 추정을 규정한 조문입니다. 추정은 사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때 반증이 없다면 사실로 인정하지만 반증이 있다면 이 추정은 깨집니다. 단순 사실보다는 강한 개념이고 '간주'보다는 약한 개념입니다. 즉 844조 조문에 의하면 부부 사이가 법률혼이라면 처 쪽이 누구의 아이를 낳던 부부의 아이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이 추정을 깨기 위해 846조, 847조가 있는 것입니다. 846조에서 '제844조의 경우에 ~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고 하여 친생부인의 소의 요건은 자가 친생추정이 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865조를 보면 845~851, 862, 863조는 규정되어 있지만 847조만 빠져있습니다. 이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기 위해선 자녀가 친생추정이 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친생부인의 소와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의 소는 언뜻 비슷해보이지만 소송요건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친생부인의 소는 847조에 2년내에 제기하여야 한다고 하여 제척기간을 규정했지만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에서는 이러한 제척기간이 없습니다. 즉 자녀가 친생추정이 되어있지 않다면 언제든지 해당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문에 대한 것은 여기까지로 하고 이번 판결의 쟁점들로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의 원고는 남편이고 피고는 자식 A와 B입니다. A 와 B의 법적 쟁점이 다른데 우선 비교적 쟁점이 간단한 A쪽부터 보겠습니다.
A는 남편이 무정자증이기 때문에 부부의 상호 '동의'하에 제3자의 정자로 임신하여 출생한 아이입니다. A에 대해서 1심은 1. 원고의 아내가 A를 임신한 이상 친생추정은 성립하고 무정자증이 있다고 하여 친생추정의 예외는 인정할 수 없음.
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1심 판사가 이 사건이 이렇게 일이 커질지 예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법리적으로는 꽤 심플(...)하게 판단하였습니다. 그냥 844조를 적용한 것이지요. 그래서 원고의 소는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하여(친생추정이 되므로 865조 소송을 제기할 수 없음)각하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고는 당연히 항소하여 이 사건은 원심은 항소심으로 넘어갔습니다. 항소심에서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원고가 '동의'한 이상 출생한 자녀는 원고의 친생자로 추정되므로 865조 소송은 부적법하다"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더 명확한 논리를 들어 이 소를 각하하였습니다. 단순이 844조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원고가 인공수정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친생추정이 성립한다고 하였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는 신의칙에 근거한 판단으로 보입니다. 민법 2조인 신의 성실의 원칙 중 금반언의 원칙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제와서 말 바꾸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즉 인공수정 당시 원고가 동의를 하였기 때문에 이제와서 그 동의를 번복하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나며 그렇기 때문에 친생추정이 성립하여 865조 소송이 부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도 원심이 옳다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A쪽은 크게 논란이 될 것은 없어보입니다. 민사소송에서 신의칙은 소위 무적의 치트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가는 별개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A에 대한 판결에서 별개의견이 2개가 나왔는데 그 중 민유숙 대법관이 별개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모든 인공수정이 아니라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동의’를 받아 ‘제3자 제공 정자’로 인공수정을 한 경우에 한정하여 친생추정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함"
이 별개의견은 다수의견과 결과는 같지만 다수의견이 '모든 인공수정에 대하여 친생추정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것을 우려한 별개의견으로 당사자 간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 논란이 되는 B에 대한 판단입니다. 
1심은 A와 마찬가지로 844조를 단순 적용하여 판단하였습니다. 1심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아보입니다. 어차피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단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니까요.
항소심은 " 원고와 B의 유전자형이 서로 달라 친생추정의 예외가인정되지만, 원고와 B사이에 유효한 양친자관계가 성립되었으므로, 결국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항소심의 판단에서 굵은 글씨가 이번 사건의 핵심입니다. 기존에 대법원은 친생추정에 대하여 '외관설'을 채택하였습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외관설의 정의는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경우 등 동서의 결여로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고 하는데 즉 부와 자식의 유전자가 다르더라도 부부가 같이 살고 있으면 친생 추정이 된다는 뜻으로 친생 추정의 범위가 넓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이 외관설을 뒤집은 것입니다. 겉으로 부부라고 하더라도 유전자가 맞지 않으면 친생 추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여 친생 추정의 범위를 좁혔습니다. 하지만 원고와 B가 양친자 관계가 형성되었기에 결과는 항소기각이었습니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습니다.
B판결에서 핵심 쟁점은 종전 대법원의 결정인 '외관설'을 유지하느냐 였습니다. 사실 항소심 판단이 맞다면 어차피 원고는 소송에서 패소할 것이지만 항소심에서 기존 결정을 뒤집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에 외관설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종전의 외관설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법원에서 제시한 이유 중 몇 개를 인용하자면
"친생추정 규정은 혈연관계의 존부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음 (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임)"라고 하여 민법 844조 조항을 좁게 해석하였고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하고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큼"라고 하여 친생부인의 소에 제척기간을 둔 민법 규정의 취지를 존중하는 취지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를 들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대법원 홈페이지에 있는 보도자료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B에 대한 소송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반대의견 쪽이 더 와닿았지만 법적안정성을 중요시한 대법관 다수의견의 주장 또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닙니다. 다만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을 통해 친생부인의 소 제척기간을 완화하는 등의 입법을 통한 개선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을 보아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이 어느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