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 사건 


1949. 6. 26 백범. 소위 안두희가 쏜 4발의 총탄에 의해서 사망



정황


-  조수황
암살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승만을 경무대에 찾아가서 만나는데, 
그때 이승만이 "백범이 공산당과 내통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네다. 
그분 주위에 빨갱이가 잠입했다고 합네다" 라고함.


- 암살이 일어나자 김구의 비서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하기 이전에 군헌병대가 도착.
그들이 있는 곳과는 거리도 꽤 멀었는데, 과연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것이다.
미리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경찰이 안두희를 데리고 가려고 하니, 제재를 하고 자기들이 체포해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 당시의 헌병대 사령관 장흥 대령 (임정계통). 
김구를 존경한 사람이었는데. 사건이 터지고 5시간만에 장흥은 잘림. 
그리고 나서 이 사건을 부사령관인 전봉덕이 사건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전봉덕이 이승만에게 보고를 하려고 가니, 이승만이 그에게 그만 맡겨버림.


- 김성주
안두희가 체포되니 풀어주어야 한다고 데모. 나중에 반이승만으로 돌아서서 조봉암 후보의 선거를 돕게 되는데, 
술만 먹으면 "백범 선생의 암살범이 누구인지 내가 다 알아" 라고 하면서 떠벌리고 다님.
그래서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체포를 하는데..
재판을 해서 7년형이 선고 됨. 그런데 원용덕이 그를 데리고 나와서 자기 집 지하실에서 총으로 쏴서 죽여버림


- 장흥산 포병사령관  
안두희의 상관, 술만 취하면 "내가 안두희 보스야" 라고 했음.
김창용이 그를 체포해서 감옥에 집어넣는데, 장흥산이도 자살로 감옥에서 죽음


- 육참총장이 최병덕  
홍영기 검찰과장을 찾아와서 
"홍 소령, 안두희를 얼마나 구형할거야? 사형은 너무 심하고, 10년 정도만 구형하지. 적당히해. 
검찰도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을 알지?" 라고 했다는 것.


- 안두희
사건후 바로 석방이 되어서 군에 두계급 특진하여 복귀   
소령으로 제대, 강원도에서 군에다 식료품을 납품. 그 당시 강원도 5대 부자





추가. 현재 우리나라 개독교가 이꼴 난것도 이승만 장로님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