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국내 주류업계 1위를 달리고 있던 국순당은 2008년부터 2010년사이 영업실적이 미흡한 기존 도매점을 퇴출하고 주요 지역에 직영 도매점을 확대하는 도매점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한다. 당시 도매점주들은 개인사업자들로 국순당과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약정이 갱신되는 계약을 맺고 있었다. 기존 도매점 퇴출이 여의치 않았던 국순당측은 당시 전국 74개 도매점 중 23개 도매점을 교체 대상으로 정하고 본사 직원을 파견하는 방법 등으로 신규 직영 도매점을 지원하기로 했다. 새롭게 도매점을 여는 이들에게는 기존 도매점주들이 전산에 입력해 쓰던 거래처 정보 등을 기존 도매점주들의 동의 없이 그대로 이관했다. 이런 계획이 추진되자 수도권 도매점주들이 집단 반발하며 논란이 됐고 결국 공정위 제재와 검찰 조사 및 재판으로 이어지게 됐다. 1심과 2심은 본사의 거래처 정보 이관 행위가 ‘영업비밀 침해’라고 인정했다. 우리 법에서 ‘영업비밀’은 "공연히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상당한 노력을 들여 비밀로 유지하는, 영업 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영업비밀인지 아닌지는 객관적으로 비밀 유지ㆍ관리 등이 이뤄졌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도매점주가 전산시스템에서 거래처 정보를 보려면 별도의 로그인을 통해 자신의 도매점 정보만 볼 수 있었다. 국순당 직원들도 자신의 업무 범위 내의 도매점 정보만 볼 수 있도록 접근권이 차등화돼 있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도매점 전산 시스템에 있는 거래처 정보를 ‘상당한 노력으로 비밀로 유지되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정 거래처가 어떤 도매점에 물품을 주문해 온 내역이나 특정 거래처에 어떤 조건으로 판매를 하는지 등은 핵심적인 판매 영업 정보이고 정보 접근자도 제한돼 있으므로 영업비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당시 국순당측은 전산상 정보를 이용해 거래처에 기존 도매점에서 납품한 물량을 반품하게 하고 추가 사은품을 더 주는 방식으로 새 도매점과 거래를 개시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일부 업무방해 혐의와 영업비밀침해가 인정된 배 대표는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른 임원과 직원들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00만~400만원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업무방해 및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누설등)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순당 대표이사 배중호(66)씨와 임직원 4명 및 회사에 대해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이른바 ‘국순당 갑질’ 사태 이후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순당측에 제재를 내리고 2014년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긴 지 5년여 만이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영업비밀누설을 유죄로 인정한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은 기존 도매상과 국순당측이 공유한 거래처 정보 자체를 두 당사자 사이의 영업비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도매점주들은 애초 개인용 컴퓨터에 거래처 내역을 관리해오다 2002년쯤 국순당이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구축하자 이곳에 거래처 관련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입력한 정보는 국순당이 소유ㆍ관리하는 서버에 저장됐고, 도매점주들뿐 아니라 국순당측도 정보를 영업에 활용해왔다. 대법원은 "도매점주들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6~7년간 국순당이 정보를 활용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양측이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는 등의 사정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도매점주들이 국순당에게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관리를 사실상 위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만약 제3자가 이 시스템에 무단 접속해 정보를 빼냈다면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되지만, 국순당과 그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는 비밀관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