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치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고(故) 밥 호크 전 총리가 딸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듣고도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신고를 무마시켰다는 폭로가 나와 호주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영국 BBC는 8일(현지시간) 호크 전 총리의 딸인 로슬린 딜론(58)이 아버지에게 1983년 그의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지만 호크 전 총리는 그의 경력에 손상이 갈 것을 우려해 딸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딜론이 아버지의 유산 중 400만 호주달러(약 32억 8500만원)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알려졌다. 딜론의 법정 진술서에는 그가 고 빌 랜더유 노동당 의원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1983년 당시 그에게 세 차례나 성폭행 당했다는 진술이 적혀 있었다. 랜더유 의원에게 세 번째로 성폭행을 당한 뒤 딜론은 아버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호크 전 총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유감이지만 지금으로선 어떤 논란 거리도 만들고 싶지 않구나”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현재 노동당 당수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요청했다. 딸의 성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랜더유는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다 1976년부터 1992년까지 노동당 의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월 27일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호크 전 총리의 비정한 선택에는 노동당 유력 인사였던 랜더유 의원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랜더유 의원은 호크 전 총리의 재임기간 내내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딜론의 여자 형제인 수 피터스 호크는 호주 언론과 인터뷰에서 “가족 모두가 딜론의 피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딜론이 성폭행 피해를 알렸을 때 돕겠다는 반응들이 있었다”면서도 “사법 체계를 통한 방식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호크 전 총리는 1983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총 8년여동안 호주 총리를 지냈다. 노동당 소속으로서는 최장수 총리다. 그보다 총리직을 오래 맡은 사람은 단 2명인데 모두 자유당 출신이었다. 그는 역대 호주 총리 중 국민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 5월 16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호주 사회가 애도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랬던 호크 전 총리가 가정에서는 딸의 성폭행 피해를 숨기기 급급한 아버지였다는 점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호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