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박형남 정재오 이숙연 부장판사)는 A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금지 기간 연장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7년 11월을 기준으로 35억4천여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건설회사 대표와 감사 등을 지낸 그는 1년에 1천200만원 안팎의 근로소득을 신고했다. 2013∼2015년 19억원의 배당소득과 2억8천여만원의 인정 상여 소득이 발생했지만, 건설업의 특성상 증빙이 부족한 회사 지출 등을 회계처리한 결과일 뿐이지 본인의 실제 소득은 아니었다고 버텼다. 그 사이 A씨는 연평균 3회 이상 일본 등지를 오갔다. 아내와 자녀의 기록까지 더하면, 2011∼2019년 이들 가족의 해외 방문은 30차례가 넘었다. 세무당국의 요청을 받은 법무부는 2016년 1월부터 A씨 본인에 대한 출국을 금지했다. 이 처분은 6개월 단위로 거듭 연장됐다. A씨는 지난해 또 출국 금지를 연장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완전히 엇갈렸다. 1심은 20억원이 넘는 배당소득과 인정 상여 소득이 회계처리의 문제일 뿐 실제 소득은 아니었다는 A씨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 "그 돈을 빼면 2011∼2017년 A씨의 총급여가 1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 돈으로 네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한데 수차례 해외 출국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심은 "A씨가 주장하는 소득만으로 그런 출입국·체류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므로, 국내외에 재산을 은닉하고 있을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출국금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배당·인정 상여 소득에 대해 "A씨가 은닉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주장하는 내용이 허위라고 인정할 뚜렷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을 바꿨다. 잦은 출국 기록을 두고도 "A씨와 가족의 출국 행선지가 주로 일본·마카오 등 가까운 곳이고 방문 기간도 2∼4일에 그친다"며 "이것만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A씨가 체납한 세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식 증여세(31억여원)와 관련해, 이미 해당 주식이 당국의 공매처분으로 매각된 만큼 A씨가 그 주식이나 매각대금을 해외에 도피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미 그 재산을 상실해 더는 해외에 도피시킬 가능성이 없는데 출국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세 미납을 이유로 한 출국금지는 재산의 해외 도피 등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지, 미납자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해 세금 자진 납부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