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1916~1983 

 

 

구일본군 출신으로 국군에 참가한 친일파중에서도 레알 순혈 친일파 출신.

을사5적 다음으로 쳐죽일놈으로 평가 받은 이하영의 손자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장교로 임관했음.

 

할아버지가 고위급 친일파인데다가 작위가 있는 귀족인데도 최전선에투입되서 복무했다고함.

중일전쟁에 참전해서 중국땅에서 3년간 전쟁을 치루다가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뉴기니전으로 파병됐음.

이때 무공훈장까지수여받음.











 

그런데 반전.

 

전쟁범죄에는 전혀 연류되지 않았고, 상관이 원주민 처녀를 강간하려고 하자 그걸 막다가 오지로 전출되기도 햇음.

창씨개명을 끝까지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죽자 작위 세습을 거부. 

 

해방된 이후에는 다른 일본군 출신들이 국군에 한자리씩 차지할때 ' 난 민족의 죄인이라 반성해야 한다  '라고 하고 거부.

결국 1949년에 국군에 입대했고,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지만 창씨개명 거부한것과 작위세습을 안한것이 참작이 되서

사면 되었다고 함.

 

전쟁이 벌어지자 3사단장으로 참전. 영덕에서 전투중에 상관인 김백일(간도특설대 출신)이 민간인지역에 포격을 명령하자 "못하겠는데요?' 라고 거부.

 

북한으로 진격하고나서도 포로 학살을 하지 않고 포로수용소로 넘기고 북한 민간인을 보호했다고함.

 

이 무렵에 결혼을 했는데. 어머니가 며느리될 여자의 집안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친일파인 우리집이 뭐가 그리 잘났는가?"   라는 말로 결혼을 성사시켰다고함.

 

전후에는 이승만이 재선(그 사사오입사건)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자   전군에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훈령을 내리면서 군의 정치 개입을 막음.

 

그외에도 김재규를 아껴서 진급할수있도록 도와줬다던가. 조봉암 사형때 탄원을 주장했다던가 하는 일화들도 있음.

 

같은 친일파 출신이나, 그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잘살고있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반성 ㅈㅗㅅ도 없는 현실에서

이런 친일파도 있었다는게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