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 마음이 무척 힘들었던 적이 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가끔씩 그럴 때가 찾아온다. 그 무렵,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정신과 의사 성도님이 몇 분 계신데, 그중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간접적으로 전해주었다.


“요즘 이찬수 목사님 얼굴 표정과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음이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안 들키려고 목소리도 밝게 하고 애를 썼는데 그 분은 내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이실직고하고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정신과 의사를 찾기 전에 하나님이 천사 한 사람을 보내주셔서 다 나아버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멀쩡 해졌다.


그 천사가 누군가 하면, 우리 교회 고등부에 나오는 한 여학생이었다. 그 어린 여학생과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 상한 마음이 다 회복되었다. 그 여학생은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자매였다. 그가 나를 찾아와서 장문의 편지를 주고 갔는데, 그 편지 앞부분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목사님, 혹시 작년 6월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한 달 만에 퇴원했다는 소녀의 이메일을 기억하시나요? (...중략...) 그런데 채 1년이 안 되어 다시 자살 시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뻔했어요. 정신과 약 90알을 먹어서 의사 선생님들도 심장발작으로 죽거나 의식불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살아났답니다. 그리고 눈 뜬 지 일주일 쯤 뒤에는 다시 정신병동에 입원해서 두 달 있다가 나온 지 2주 되었어요.


병원에서 퇴원하고 며칠 뒤에 또 다시 자살충동이 와서 한강으로 갔다고 한다. 그때 한강으로 뛰어내리려다가 한강을 순찰하며 다니는 경비정 때문에 못 뛰어내렸다고 한다. 자기가 지금 뛰어내리면 경비정이 건져낼 것이고, 그럼 자기는 또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테니 뛰어내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자매였는데, 그 자매가 우연히 나의 설교를 듣게 됐다고 한다. 그 설교를 계기로 분당우리교회로 오게 되었고, 지금도 설교 말씀으로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날 이 아이가 선물이라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자기가 만든 시집 같은 것이었다. 보니까 시, 명언을 한 장 한 장 코팅하고 명화도 담아서 묶은 것인데 밤을 새워 만든 것이란다. 그렇게 정성껏 만든 묶음을 두 개나 선물로 주었다.


그것과 함께 동봉한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죽으려 했던 저에게 이런 열정이 남아 있었나 저도 놀랐습니다.”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 아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나도 너만 한 딸이 있단다. 내가 네 큰아빠 해줄게. 너는 내 조카 해라.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해준 후에 아이를 보냈다. 그 아이가 내게 준 편지 말미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추신. 목사님 은퇴하시고 밥 한 끼 같이 먹을 성도 없으실 때 저한테 연락 주세요. 그땐 제가 어른이니까 맛난 것 대접할게요.



나는 그 편지를 보면서 너무 목이 메었다. 그 무렵 예배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얘기를 했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소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어떤 장로님이든, 교역자든 둘만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큰 교회에 담임목사로 있지만 은퇴하면 밥 한 끼 얻어먹을 성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쓰여 편지에 그렇게 적은 것 같다. 그 편지를 보고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이 지금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너 때문에 힘내기로 했다. 목사님이 약속할 게 하나 있는데, 너에게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라도 목사로서 실망시키는 일 하지 않고 끝까지 목회 잘 할 것이다. 그러니 너도 목사님 은퇴하면 밥 사준다는 그 약속 지켜야 한다. 네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꼭 살아야 해. 그래서 목사님에게 밥 사주겠다는 그 약속 꼭 지켜야 한다. 네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발견하지 않았니? 그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해. 목사님도 끝까지 절대 변질되지 않을게. 약속하마.”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 아이 생각을 한다. 그 아이는 죽으면 안 된다. 내게 희망이다. 또 내가 그 아이에게 희망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허다한 허물을 덮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출처 - 갓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