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수출관리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3대 품목 수출 규제와 백색 국가(수출 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과 관련해 5월 말까지 일본의 입장을 밝히라고 일본에 통보했다. 일본은 그러나 전향적인 답변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나승식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일본 측 답변은 있었지만, 우리가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아울러 8월에는 한국을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이유로 ▲ 한일 정책 대화가 열리지 않아 신뢰 관계가 훼손된 점 ▲ 재래식 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 수출 심사·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 세 가지를 들었다. 한국은 일본이 문제로 제기한 사안을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모두 해소했다는 입장이다. 나 실장은 "3개 품목의 경우 지난 11개월 동안 운영과정에서 일본이 수출규제 원인으로 지목한 안보상의 우려가 일절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않자, 국제기구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일본 수출 규제가 1년이 다 돼가도록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끌어내지 못한 데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WTO 분쟁 절차는 사실상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은 미국의 반대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꺼내 들기 어려운 카드로 관측됐다. 한국은 지난해 7월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하자 "자유무역 원칙을 어겼다"면서 WTO에 제소했다. 양자 협의를 진행하다가, 그해 11월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제소 절차도 잠정 중단했다. 분쟁 해결 절차를 다시 진행하려면 본격적인 재판에 해당하는 WTO 분쟁 해결기구에 패널 설치를 요청하면 된다. 패널 심리는 통상 6개월 정도 걸린다. 심리가 끝나면 양당사국은 패널보고서를 제출하고 회원국이 찬성하면 패널보고서를 채택한다. 만약 상소한다면 양국 간 다툼은 3년 이상으로 장기화할 수 있다. 한일 수산물 분쟁의 경우 약 4년이 걸렸다. 최근 미·중 갈등 속에 WTO가 미국의 견제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어 WTO 판단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WTO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는 미국의 위원 선임 반대로 작년 12월부터 기능이 마비됐고, 상소 기구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사무총장도 최근 돌연 중도사임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나 실장은 "현재 회원국을 중심으로 상소 기구가 폐지된다 해도 그 대안으로 여러 가지가 검토되고 있다. 사실상 WTO 기구에 대한 여러 논의를 미국 쪽에서 주도하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WTO 자체의 결정이나 제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을 때만 해도 한국 수출은 타격을 받았다. 당시 3개 규제품목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이 일본산이었고,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 역시 40%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