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겨울 국군과 경찰 등 3만여 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토벌군은 지리산 일대를 에워싸며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 작전을 벌였다. 작전명은 '쥐잡기작전(Operation Rat Killer)'이었으며 토벌군의 명칭은 '백선엽야전사령부(백야사, Task Force Paik)'였다. 백야사는 일본군이 만주에서 사용했던 초토화작전 방식으로 토벌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당시 전쟁을 피해 산에 숨어있던 조재현(당시 9세) 가족은 밀려오는 토벌군을 피해 도망쳤으나 할아버지는 군인에게 잡혀 몽둥이로 맞아 온 몸이 다 부서져 사망했다. 옆에서 2살배기 아이를 안고 있던 작은 숙모는 남편 어디 갔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한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안고 있던 아이도 함께 죽었다.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던 할머니와 숙모, 6살 사촌동생은 토벌군에게 붙잡혀 광주포로수용소로 보내졌으나 열악한 처우로 모두 병들어 죽었다.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진실이 규명된 사건 중 '대하리 피란민 일가족 희생사건'이라 명명된 사건의 내용이기도 하다(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제5권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사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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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반란군에게 협조했다며 사살되었고, 밥을 해주었다고 살해되었고,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민군 점령 하에서 부역했다고 사살되었고, 머리를 깎아 인민군 패잔병으로 보인다며 살해되었고, 심지어 국방색 옷을 입어 수상하다는 이유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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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백 야전사 작전 당시 비인도적 행위를 했던가를 자문해보지만 한 점도 하늘에 부끄러운 일은 없었다고 늘 자부하고 있다"


- <실록 지리산 –백선엽 육필증언록>(1992)


https://news.v.daum.net/v/20200603183001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