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10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디지털성폭력 상담사'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건 경험 없는 초보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자, 피해자의 고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정부가 '한국형 뉴딜' 정책 일환으로 추진 중인 비대면·디지털 일자리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여성가족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사업 중 하나인 디지털성폭력 상담원 일자리다. 여가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최근 디지털성범죄 피해 대응을 위한 상담원 18명을 포함해 총 50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인건비, 운영비 등에 추경 8억7000여만원을 배정한 일자리 사업이다. n번방 사건과 같은 아동·청소년 불법 성착취물을 비롯해 리벤지 포르노, 불법촬영, 지인능욕 등 인터넷·SNS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고 예방하는 업무를 한다.

그러나 디지털성폭력 상담원 자격 요건은 단순하다.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관련 시설 상담원 자격 중 1개 이상 수료하면 된다. 상담원 자격 수료증은 상담 이론 및 관련 법령 등에 관한 100시간 짜리 교육만 이수하면 발급 받을 수 있다. 동종 업종 관계자들은 관련 전공이나 경력도 갖추지 않은 '초보자'에게 디지털성범죄 피해 상담 업무를 맡기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업무에 필요한 자격 요건은 따지지 않고 일자리 만들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성폭력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수 년간 일해온 A씨는 "실무경력이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단지 가정폭력, 성매매,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100시간 이수한 자격증만 있으면 디지털성폭력 상담사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가정폭력, 성매매와 디지털성폭력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100시간 교육만 받으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성폭력피해자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중요한 초기상담 업무를 자격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맡기는 셈"이라며 "무책임한 전시행정이자 심각한 예산낭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현장에 투입되는 상담가는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경험없는 초보자가 성폭력 상담을 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가해"라고 말했다. 이어 "상담을 요청한 피해자가 여가부 운영 기관의 미숙한 상담에 실망하고 다시는 피해를 호소하거나 상담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