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는 올해 한국은 –1.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올해 말에 우리는 GDP규모가 두어 계단 더 올라선다. GDP대비 세계 7~8위의 경제대국이 된다(물론 숫자가 뭐 얼마나 중요하랴...국민의 삶이 중요하지)

만약 우리가 올해 다른 OECD 국가 중 제법 선전한 호주(-4.1%)만큼만 경제가 망가진다면? 우리 GDP는 2019년 기준 1조 6,421억 달러다. 여기에서 사라지는 4.1%를 돈으로 환산하면 673억 달러쯤. 우리가 한 해 생산한 부가가치 79조 1천억 원 정도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비교적 선방한 경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비용을 줄인다. 
코로나로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이 10에서 8로 줄었다면, 의료비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한강 공원이 개방되면서 더 팔린 치킨의 매출은? 
전 세계에서 프로야구가 가장 먼저 재개되면서 얻은 효용과 탕정의 삼성 반도체 공장이 멈춰서지 않으면서 지킨 기회비용은 얼마나 될까.

지난달 우리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더 채워놓기 위해 해외에서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를 발행했다. 유로채권시장에서 5년 만기로 7억 유로를 발행했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됐다. 그런데 이자율이 ‘-0.059%’다. 
한국정부가 9천5백7십2억 원을 빌리는데,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가 오히려 우리 정부에게 이자를 준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 정부가 7억 2백만 유로를 빌리고 10년이 지나 7억 유로만 갚으면 된다. 물론 사상 처음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기사는 네이버메인에 안 올라오는가?)

이 튼튼한 국가신용을 만드는데 정은경과 중대본은 몇 %나 기여를 했을까? 그들의 사회적 기여는 수많은 경제적 효과로 이어진다. 흔들리는 경제를 버티게 한다. 
그야말로 ‘방역보국’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월스트리저널은 다시 한국의 방역 성공을 심층 분석했다. ‘한국이 코로나 방역의 암호를 풀었다’면서 '그것은 간단하고, 유연하며, 다른 나라가 따라 하기 쉽다'고 추켜세웠다.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고 또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 언론만 보면 곧 나라 망하는 분위기다.

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확실하게 선진국보다 더 성과를 낸 적이 있었나. 미국에선 이미 20만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침에 신문을 보면 우리는 매일 아침 서로를 물어뜯는다. 곧 나라 망할 분위기다.


























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아랫사람에게 "사무관님" 존대
그래서인지 12일 청장이 된 이후에도 표정 변화가 별로 없다. 명실상부한 '방역 대통령'이 됐는데도 웃는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장이나 질병청장이나 차관급이긴 마찬가지지만 복지부 산하 본부장과 독립 외청장은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다. 2009년 신종플루 이후 10여년 만에 어렵사리 질병청으로 독립했기에 다른 외청과는 탄생 배경이 다르다. 정 청장은 예의 바른 모범생의 전형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같은 답이 돌아온다. 지금도 아랫사람에게 "국장님" "사무관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을 쓴다. 일이 마음에 안 들면 버럭 화를 낼만도 한데, 그런 법이 없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한다.


의대생 때는 문예반 활동
정 청장은 서울대 의대생 때 문예반을 했다. 의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 의대에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했으니 맘만 먹으면 '꽃길'로 갈 수 있었다. 
펠로(전임의) 과정 대신 보건학 석사, 예방의학박사를 하면서 '공공 의사'로 방향을 틀었다. 1994년 경기도 양주군(지금은 양주시) 보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 청장과 같은 가정의학과 의국 후배 의사는 "공공분야 의료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삼고초려 끝에 복지부 과장
노연홍 당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삼고초려(三顧草廬·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 끝에 어렵게 국립보건원에서 복지부 본부로 데려왔다"고 말한다 . 
2006년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을 수혈하는 등의 혈액 사고가 빈발하면서 의사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정 연구관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하지만 정 연구관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노 전 수석은 "의외였다. 국립보건원 연구관을 하다 본부에 와서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세 차례 요청 끝에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노 전 수석은 "중요한 일이고,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한다.당시 정은경 팀장은 혈액관리위원회 간사를 맡아 6개월 여 만에 혈액관리 체계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노 전 수석은 "굉장히 빨리 일을 따라잡았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처리하더라. 그 이후 대형 혈액 사고가 사라졌다. 당시 내가 인복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억울한 메르스 징계에도 "할말 없다"
2015년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는 매우 아픈 기억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무국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간에 대타로 징발됐고 매일 브리핑 단상에 섰다. 당시 차분한 브리핑으로 신뢰를 줬다.
하지만 메르스 종식 후 실패의 책임을 묻는 바람에 휩쓸렸고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주변에서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할 일을 할 뿐"이라고만 했다. 징계에 대해 말을 아꼈고 이의제기 같은 걸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