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에 열광했던 한국언론, BTS 성과 ‘평가절하’.. 왜?
[하성태의 와이드뷰] ‘성공 공식’ 뒤집은 BTS.. 하나의 시스템이 된 ‘아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공개된 5일자 빌보드 차트에서 새 앨범 ‘BE(Deluxe Edition)’의 한국어 타이틀곡인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발표된 제63회 그래미 어워즈 부문별 후보에서
역시 빌보드 싱글 1위곡인 ‘다이너마이트‘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오른 것에 이어
겹경사를 맞은 방탄소년단.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각각 3년 및 4년 연속 수상한 데 이어 다소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그래미 어워즈에 진출한 방탄소년단이 써내려가는
전 세계 ‘음악신’의 ‘새역사’는 이제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방탄소년단의 힘과 영향력은 나보다 3,000배는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감정적으로 역동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훌륭한 아티스트를 많이 배출한다고 생각한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역시 BTS의 성과가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영국 BBC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한국영화에 의미하는 것>이란 기사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봉 감독이 기자들에게 전한 소감을 위와 같이 전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로라 비커 기자와 BBC 코리아 기자들이 함께 쓴 이 기획기사는 한국 내 소식통을 인용해
봉 감독의 수상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한 바 있다. 해당 기사의 코멘테이터로 참여한 입장에선,
BBC가 한국 언론만큼 더 심도 있게, 내부 시선으로 <기생충>의 수상 의미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와 비교한다면, 우리 매체들은 봉 감독이 본인의 영향력보다
“3,000배나 많다”고 평가한 BTS의 성과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분석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 국내 미디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방탄소년단의 성과를 평가절하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이가 나왔다.
지난해 출간된 < BTS The Review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의 저자인 음악평론가 김영대 씨였다.

○ <BTS The Review>의 저자 김영대 평론가의 분석

“우리나라 기자들이 왜 BTS에 대해 평가절하 하느냐, 덜 다루느냐, 축소 보도하느냐. 실제 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도 있고. 나이 든 데스크들은 과거 자기가 ‘국뽕’ 보도했던 걸 떠올리면서 지레짐작하는 것도 있고. 업계에서는 자신들 영향력 바깥에 있는 존재가 불편하고 자기들 이익이랑 배치돼서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자들은 자기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했다.
자기들이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존재여야 하는데,
무시하고 싶거나 별거 아니여야 하는 심리 상태가 됐을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고.
BTS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하는 그룹인가, 싶어서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죠.”

4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다스뵈이다>의 진행자 김어준씨가 요약한 김영대 평론가의 관련 분석이었다.
김어준씨는 지난달 27일 방송에서 김 평론가의 관련 분석이 BTS 팬들로부터 화제를 모으며
각종 언어로 된 댓글이 해당 영상에 달렸다고 소개했다. 김 평론가 역시 해당 방송을
BTS ‘번역계’ 팬들이 영어 및 각종 언어로 번역하고 영상을 공유하며
국내의 ‘BTS 평가절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고 했다. 어떤 분석이었기에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지금 (BTS가) 받는 게 대수로운 장르는 아니잖아.’
이렇게 뭔가 알게 모르고 (BTS의) 성과 자체를 별거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고 싶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기사의 양도 상대적으로 너무 적죠. 오늘 기사를 보면서도, 단 한 분(의 기자)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더라.
BTS가 후보에 오른 부문이 팝 부분이란 사실이다. 여기서 팝은 알앤비, 힙합과 같은 장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팝 스타일이란 거다.

또 하나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 팝이란 건 그냥 보편적인 대중가요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인 라디오 채널에서 하루 종일 나오는 음악들을 팝음악이라고 한다.
이런 팝은 지금 미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주류이고 그들 사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그런 부문인 거다.”
(김영대 평론가)


김 평론가가 그런 확신을 한 것이 바로 그래미 어워즈 후보 발표 직후라고 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 선정 소식에 대해 문의하는 기자들이
던지던 질문의 의도 자체가 이상했다고 했다.

김 평론가의 이러한 분석은
그간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언론 보도를 바라보며 들었던 일말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준 평가라 할 만 했다.

왜 그럴까.
하나는 현재 언론이나 국내 음악 시장 모두 미국 팝 시장을 정통하게 분석할 전문가나 전문 기자가 많지 않다.
과거 1990년대까지 빌보드 팝 차트를 주요하게 분석했던 전문지나 전문 기자 역시 그 숫자가 희박해졌다.

미 팝 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기도 했다.
3대 거대 기획사를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을 호령하는 K-팝의 괄목할 만한 성장 덕분이기도 하지만,
BTS에 대한 언론의 박한 평가는 그와는 다른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김 평론가의 그래미 어워즈에 대한 분석을 좀 더 들어보자.

“이건 한국적인 맥락에서 이해가 어렵다.
미국은 지역과 인종과 나이대 별로 시장이 굉장히 세분화돼있고, 거기에 따라 소비자들이 다 다르다.
그 소비자들이 각각의 시장을 형성해 있고, 그 시장 자체를 넘나든다는 의미로 ‘크로스오버’란 말을 쓴다.
이건 단순히 장르를 넘나든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의 기원은 시장 자체를 넘나든다고 해서,
마이클 잭슨, 프린스, 조지 마이클, 프린스...

그게 팝이라는 거다. 장르와 상관이 없다.
팝이란 스타일이 물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팝이란 건 우리말로 ‘가요’, 가장 제너럴한 미국 대중음악을 말하는 거다.
지금 BTS는 미국에서 팝 아티스트로서 대접을 받고 있고,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갔다는 거다.”

○ BTS와 ‘아미’라는 현상

비교 대상이 존재한다. 2012년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던 싸이의 성과와 국내 언론의 열광 말이다.

당시 국내 언론과 방송들의 호들갑과 달리 싸이의 성공은 전통적인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대중음악에서 한 개의 싱글(혹은 곡)만 큰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의 공식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BTS의 성공은 해외의 반응이 국내로 역수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평론가 역시 이에 주목하고 있었다.

“BTS의 성공은 어느 정도 보도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그것보다 사실은 못 미치는 어떤 활약을 보였을 때
미디어의 보도양이나 커버되는 범위를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고,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저도 알게 됐다(...).

참 이상하게 뭔지 아십니까?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그 분들은 굉장히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엔 (BTS 같은) 이런 (언론)반응이 없었다. 아이돌에 대한 폄하가 있는 거다.

‘이건 기사 거리가 안 돼’. 재밌는 얘기를 들었는데, 언론사 어떤 높은 분이 그런 말씀을 했다는 거다.
이건 ‘다이너마이트’가 상을 받은 거지, BTS가 받은 게 아니야.
그 곡이 어쩌다 좀 떴다, 하지만 BTS가 거둔 성취는 아니다(라는 평가다).”

성과만 놓고 보면, 지금쯤 BTS를 조명하는 방송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나왔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BTS가 국내 미디어를 ‘패싱’하는 건지, 미디어들이 BTS를 무시하는 건지 의아할 정도 아닌가. 이를 대형 기획사 아이돌이 거둔 성과에 대한 미디어의 열광과 비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 평론가가 주장한 핵심도 거기 있었다.

“그런데, 뭔가 우리 스스로 이런 성과가 납득이 안 가는 거다.
‘뇌피셜’스럽게 말씀드리면 BTS라는 현상, 미국에서의 성공,
BTS의 세계적인 열풍 자체가 (우리) 제도권의 시스템을 거치지 않았다는 거다.

이 제도권을 점하고 있는, 언론이나 프로모터, 음반회사 등이 보기에
썩 납득이 가지 않고 유쾌하지도 않은 거다.

성공의 공식이라는 게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주체는 자기가 그 역할을 함으로써 그 가수의 성공에 이바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방송에서 몇 번 틀어줬으니 됐어, 이런 것들이 있다든지.”


김 평론가는 ‘아미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BTS라는 특이한 존재가 유일무이한 현상을 만들었다는 분석이었다. ‘외국 팬과 한국 팬의 연대‘라는 개념 말이다.
이 연대는 ‘반트럼프’ 운동이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해시태그 운동처럼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전 세계 ‘아미’들의 실천으로 나아갔다.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이중의 타자성을 공유하는 BTS와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깨부수려는 ‘아미’가 만들어낸 의외의 결실이라고 할까.

“헌데 BTS 현상은 굉장히 독특했다.
어떤 풀뿌리 같은 운동 비슷하게, 전 세계에서. 팬들의 자발성과 그들 간의 연대.
예전엔 외국 팬과 한국 팬의 연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미라는 존재는 독특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의 콘텐츠를 번역하고,
그들 자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것이 기존 기획사 홍보팀의 능력이라든지,
프로모터의 능력을 우회하는 거다.”

국내나 해외 모두,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언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언론 및 방송은 업계의 중요한 홍보 창구다.

매체는 기사와 방송을 통해 업계에 영향력을 발휘,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한편 수익을 올리는데 이득을 얻는 구조다.

BTS는 언론과 그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것 같다.
컴백마다 방송과 언론 인터뷰를 이용하는 여타 거대 기획사 아이들의 행보와는 많이 다르다.
과거 해외 진출 초반, BTS의 성과를 조명하는 언론 또한 많지 않았다.


BTS의 성과를 대단하다 평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신드롬과 비교하면 훨씬 더 선명해지지 않는가.
이와 비교해, 비틀즈를 뛰어 넘는 성과를 거뒀다는 국내의 평가는 어떠한가.
‘인종차별을 포함한 낡은 관습의 서구 음악 산업을 뒤집어엎었다’(美 <포브스>)라거나
‘BTS는 빌보드 역사에 남을 만한 놀라운 업적을 일궈냈다’(<英 <가디언>)는 외신의 평가에
걸맞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가.

이미 ‘21세기의 비틀즈‘란 평가(美 CNN, 英 BBC)를 이끌어낸 BTS의 성과를 도리어 체감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평론과 보도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BTS의 성과에 대한 업계나 미디어가 보내는 열광은 온도차가 확실한 건 아닌가.
해외 반응을 그리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기존 정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