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금융권과 가상화폐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2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금법과 시행령은 가상화폐 거래소들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영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신청을 받으면, 해당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내부 통제 시스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구축한 절차와 업무지침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믿을 만 하다'고 판단될 때만 실명계좌를 내주라는 뜻인데, 실명계좌가 없으면 영업이 불가능한 만큼 결국 은행이 각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종합 인증' 책임을 떠안은 셈이다. 더구나 금융당국 등 정부가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에 필요한 구체적 조건이나 기준을 은행에 제시한 상태도 아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필수적 평가요소, 절차 등 최소한의 지침을 요청했지만,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기준을 마련해 평가하라'는 취지의 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재 은행들은 궁여지책으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큰 틀에서 '은행권 공통 평가지침' 등을 논의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가상화폐 거래소의 '명줄'을 쥐게 된 은행의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자체적으로 별도의 기준에 따라 거래소를 평가하고 실명계좌를 내줘야 하는데, 결국 은행에 새로운 의무가 추가된 셈"이라며 "실명계좌를 내준 뒤 문제가 되면 분명히 은행에 책임도 물을 텐데, 적정 수준의 평가 기준도 정부가 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가이드라인과 감독 권한도 없는 은행이 거래소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증권사가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미 금융감독당국에서 가상화폐 관련 계좌 서비스 중인 은행의 임원을 자금세탁, 고객불만 등을 이유로 수시로 호출하고 비공식 지시를 내려 은행권이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계속 영업하려면 실명계좌를 확보해야 하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상황은 더 절박하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정확히 모두 몇 개인지 통계조차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10012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NH농협·신한·케이뱅크 등 은행들과 실명계좌를 트고 영업하는 거래소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단 4곳뿐이다. 나머지 거래소 상당수는 이른바 '벌집계좌'(거래소 법인계좌 하나로 투자자 입금) 등 변칙적 방법으로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6개월의 유예기간 때문에 3월 25일부터 당장 실명계좌를 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나머지 100개가 넘는 거래소들도 반드시 은행 실명계좌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실명계좌를 갖춘 기존 4개 거래소 역시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분위기로는 은행의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실명계좌 발급은 '바늘구멍'일 가능성이 크다. 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 계좌 제공 사업은 은행 입장에서 LCF(저원가예금)으로서의 효과나 수수료 이익은 미미한 반면 새 특금법에 따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위험)를 지게 된다"며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쉽게 내줄 수가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