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노태우.
의외로 저평가 된 인물 입니다.
물태우와 축재자로 치부 된 노태우지만  나름대로 매력도 있습니다.
노태우라면 먼저 전두환의 백담사 유배가 뜨오릅니다.
보수쪽에서 본다면 친구를 배신한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 이지만 충분한 사유가 있습니다.

전두환은 단임에 약속은 지켰으나 실질적으론 당시 버마  네윈 처럼 이원 집정부제를 꿈 꾸었습니다.
은막 뒷편 에서 허수아비 대통령을 앉혀 놓고 자신이 배후 에서 조종 할려 했습니다.

그래서 퇴임 직전 만든게 전직 대통령 예우법 입니다. 현직 대통령도 국가 중대 사안 대해선
전직 대통령과 상의를 해야 하고  최종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법 이죠.

그리고 성남시에 수만평의 부지의 일해 재단이란 건축물이 들어 습니다.
즉 상왕부 제2의 청와대죠.
일해는 날일자 바다해로 전두환의 아호죠.

또한 이듬해 2월이면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 되는데  그해 12월 연말에 노태우와 상의 없이
일방적 으로 2년 임기의 육참총장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보안사령관등을 모두 최측근 인물들로
교체 합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정부 였기에 군권을 잡아야 실질적인 실력자가 가능 한것 이었죠.
노태우는 대통령에 당선 되지만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수아비 대통령 아무리 친구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었겠죠.
그리곤 지략 참모였던 박철언 최병열과  머리를 쪼아립니다.

전두환을 몰아 내야만  진정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그리곤 취임후  안기부 감사원등 모든 정보 기관을 동원해서 전두환 일가의 비리를 찾아 내죠.

그래서 중요 언론에 소스를 제공 합니다. 형식은 언론에서 잠입 취재이나 실지 비리 소스  제공은 안기부 입니다.
요즘 말로 언플 입니다.

첫 타켓이 새마을 본부장 전경환.  소통령 으로 온갖 이권에 개입 하고  대한민국 조폭의 실질적인 두목
입니다.  유명한 김태촌 조양은 ob파의 이동재등 전국 깡패 축구 대회란것도 주관 하고 ㅋㅋㅋㅋ
왜 조폭이 필요 하냐면 공권력이 개입 할수 없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예로 선거때나 혹은  용팔이 각목 사건 같은거죠.
11.12대 총선땐 유세장에 깡패들 천지 였습니다.야당 후보가 연설 하면 청중들 에게 조용 하라 하고
여당 후보 연설땐 야유를 할 경우 끌어 내곤 하는 그런 일 입니다.
과거 자유당의 깡패 이정재 유지광과 판박이죠.

다음은 이순자 비리 입니다.당시 이순자가 운영 하는 여러 재단이 있었는데 모두 비리의 온상 이었죠.
그리곤 전두환의 친형 전기환 경찰 기동대 출신이 전두환이 대통에 오른후엔 용산 마피아라며 경찰 인사권을
좌지우지 했었죠. 전기환 다음은  대한노인회 회장이던 전두환의 장인 이소동. 그리 처남 이창석등등
하루가 멀다며 전두환 일가의 비리가 대서특필 되니 국민의 여론은 당장 가두라며 원성이 일어 납니다.

그래서 전두환이는 노태우에게 타협 합니다.
그래 내가 물러 날게 그리곤 노태우가 제의 합니다.  너무 여론이 좋치 않으니 어디 조용한 곳에 몇년만
지내면 어떨까?
그래서 백담사 유배가 확정 된거죠. 결국은 전두환이가 화를 부른 겁니다.

노태우라면 흔히 물태우 물태우 라죠.
그것은 지난 정부 까지도 독재에 찌든 국민들이  전혀  의외의 정부 대응 때문 입니다.
노조 자체를 인정치 않았고 시위라면 무자비한 진압에 익숙했던 국민들인데 시위를 해도 노사분쟁이 터져도
공권력 개입이 느슨 했기 때문이죠.

그것은 노태우의 민주화 의지 때문 이었죠.
노태우가 취임후  부터 지하 에서 맴돌던 노조가  공식적 으로 인정 되고  노조 활동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노태우 시절이 가장  노사 분규가 많았었고 노조활동이 활발 했던 시기 입니다.
노조가 얻은것도 가장 많던 시절 이죠.

노태우의 민주화 의지 만큼 후계 구도 역시 군출신  친구 친인척 배재를 지켰습니다.
김영삼과 박철언의 권력 다툼 에서도 김영삼의 손을 들어 주었고 3성 장군 출신으로  육사 동기 였던 손위 처남
김복동이가 대권을 꿈 꿀때도 주저 앉힌게 노태우 였습니다.

여담 입니다. 노태우의 처 김옥숙의 집안은 대구의 명문가 입니다.
고교와  육사 동기 였던 노태우와 김복동은 예상관 달리 처남 매부지만  전두환과 가깝게 지낸 노태우와 사이가 그리 좋치 않았답니다.

전두환 김복동은 육사 11기 최선두 주자 였고 군요직도 앞다투는 라이벌 이었습니다.
어느날  김복동의 어머니가 김복동을 불러 일렀답니다.
복동아 육사 친구 두환이도 하고 노서방도 하는데 왜 너는  대통령을 못하니?
원래 부터 그애들 보다 육사 성적도  진급도 빨랐는데 너도 한번 해야 하지 않겠니?

그말에 분기탱천한 김복동은 노태우 대통 시절 14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에 출마해 압도적으로 당선 되며
큰 꿈을 구상 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노태우는 김복동을 다그칩니다.
더이상은 않된다 이자리는 두환이 나까지로 끝이다 라며  김복동의 대권 꿈을 눌러 버렸습니다.
그시절엔 대통령이 마음 먹으면 뭐든지 할수 있는 절대 권력 이었습니다.

노태우는 군출신 이었으나 지적 마인드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분명 있었든겁니다.
노태우의 최고 치적 이라면 북방외교 입니다.
그때 중국 소련과 국교를 맺고 북한과도 관계 개선을 위해 박철언은 밀사로 평양을 40여 차례 방문 했다고
증언 했습니다.

정치엔 영원한 적이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습니다.
요즘 보수인사들 기준이면 6.25 공범인 중국 소련을 용서 할수 없죠.
분명 그들도 주적 개념의 적대국들 입니다. 허나 노태우는 국교를 정상화 하고 오늘날 중국은 우리완 최대
교역국이 됩니다.
소련과는 국교 조건 으로 30억불이란 거금을 지불 했고 오늘날 까지 헌 군함 헌 비행기 몇대 받고 퉁 쳤지만
결과적 으론 군사 강대국의  위협 에서 벗어나며 소련과 북한간의 밀월관계의 종지부도 유도 했습니다.

보수쪽의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송금 5억불은 소련에 제공한 돈에 비하면 껌값 이죠.
북한도 같습니다. 우리가 도와주면 그들도 반응이 분명 옵니다.
과거 박정희 때도 외관상은 티격 거렸지만 군비 경쟁만이 최선이 아니란걸 서로간에 인식 하고 물밑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박철언의 밀사 의 연장으로 결국 김영삼 때 정상회담이 성사 되나 김일성의 사망 으로 물거품이 되지만.
보수쪽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까지 남북 관계 개선을 원했고 노력 했으나 결국은 김대중 노무현에서
열매를 챙기게 되죠.

그게 너무 싫은겁니다.자신들이 하고픈 통일에 물꼬를 김대중 노무현이 열게 되었으니...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겁니다.

현정부 역시 북에 수모를 당하면서도 계속 대화를 요청 하는겁니다.
왜  자꾸 싸울려죠. 조금만 양보 하면 뽀글이 아닌 마귀 요괴와도 친할수 있는게 세상사 입니다.

여하튼 노태우의 북방외교는 큰 업적이 분명 하고 당시 경제도 활황이었고 집집 마다 자가용이 본격적 으로
도입 된것도 그 시기 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북방외교. 민주주의 의지.정상적인 문민정부로 이양등은 후한 점수를 줄수 있습니다.

마지막 야사 하나.
전두환은 노태우 보다 나이도 2살 많고 군시절 늘 진급도 빠르고 해서 갠적으로 노태우는 전두환을 형님으로
모셨답니다. 당연히 안식구 끼리도 나이가 2~3살 적은 이순자 에게 김옥숙이가 언니로 모셨고요.

백담사 유배 시절 열에 받친 이순자는 청와대에 수시로 전화를 넣어 김옥숙과 통화를 기대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던 김옥숙과 어느날 통화가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이순자가 따집니다.   동상 이럴수 있어 나 가만 있지 않을거야 어쩌니 저쩌니 하며...
그후 답변이 돌아 옵니다.
김옥숙 왈  재국이 엄마 지금 그런 말할 입장이 아냐 재국이 아빠 에게도 그렇게 일러 조용히 기다리라고...

이순자는 기절 초풍 합니다. 뭐라 이년 나더러 재국이 엄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변이 막힐 지경 입니다.
언제 부터 이년이 나더러 재국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