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조작 사건 총정리 
 


1. '간첩 누명' 조봉암 유족에게 24억 배상 판결 1958년 이승만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는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조봉암 선생의 장녀 조호정 씨 등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24억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습니다.


 
2.인혁당 사건 _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간첩 날조' 28억 배상 판결  1964년 박정희 
 
 
지난 60년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조작한 인혁당 간첩사건의 피해자 유족에 

국가가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3.국정원 진실위 "동백림 사건, 정치적으로 조작" 1967년 박정희 
 
 
지금으로부터 39년전에 작곡가 고 윤이상씨를 비롯해 지식인들을 북한의 조종을 받은 간첩단으로 몰았던 

동백림 사건, 기억하시죠? 

단순 대북 접촉자들까지도 간첩으로 확대 오인한 조작사건이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이수근 사건 조작" 1967년 박정희 
 
 
지난 1960년대 말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 씨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동안 숱한 의혹제기가 있어오기는 했지만 4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4-1 간첩누명 21년 복역한 이수근의 처조카 배모씨‥68억 배상 판결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씨를 도운 혐의로 21년을 복역한 뒤 무죄임이 드러난 이수근씨 처조카 배모씨 일가가 40년 동안의 자를 포함해 68억여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4-2 이수근 처조카 배경옥씨의 기구한 삶, "간첩 아들이 되기 싫어 자살한 것"
 


 
5. 납북 어민 서창덕씨, 41년 만에 간첩누명 벗어‥'무죄' 선고 1967년 박정희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뒤늦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지난 삶은 되돌릴 수 없게 됐습니다.
(1967년 이때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때라,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 중에
"야, 북한에는 거지들만 득실거리는 줄 알았는데, 제법 잘 살드라..." 이런 말 주위에 했다가
간첩으로 몰렸지요.) 
 


6.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씨 등, 34년 만에 간첩 누명 벗다! 1970년대 박정희 
 
 
지난 1970년대 발생한 이른바 '재일 동포 간첩단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7. 고 최종길 서울대 교수 유족 승소…국가 18억 배상 1973년 박정희 
 
 
고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는 지난 1973년 이른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조사를 받다가 숨졌습니다. 

며칠 뒤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투신 자살했다'고 

허위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8.'민청학련 사건' 이철 등 12명 재심서 무죄 1974년 박정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 12명이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9.'문인간첩단' 조작 피해자 37년 만에 무죄 박정희 
 
1970년대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은, 일명 '문인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3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10.'형제 간첩 조작 사건' 유족에 20억 배상 판결 1975년 박정희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는 1970년대 간첩으로 몰려 수감됐던 김우철 형제의 유족에게 국가는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김우철 형제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국가와 경찰은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습니다.
 


11. 일가족 네 명 간첩 사건 조작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일가족 4명이 간첩혐의를 받고 15년 동안 옥살이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거사위원회가 오늘 당시 수사기관이 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했니다.


 
12. "고문으로 간첩사건 조작" 1986년 전두환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가 지난 7,80년대 보안사가 수사했던 재일동포 관련 간첩사건을 다시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이 강압적인 수사 때문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3. "납북 이상철 씨 간첩조작 국가 사과" 권고 1983년 전두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납북귀환어부 이상철 간첩 사건'을 조사한 결과, 

국가가 이 씨를 간첩으로 몰아 누명을 씌운 사실이 드러나 국가가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14. '간첩 혐의' 납북 어부 26년 만에 무죄 1986년 전두환 

간첩으로 몰려 16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조개잡이 어부가 26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6년 동안 징역형을 살았던 

정 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5. 증거 조작 '모자 간첩' 피해자에 20억 배상 판결 1985년 전두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는 이른바 '모자 간첩사건'으로 처벌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준호 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이들에게 약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6.'간첩사건' 무죄 차풍길 씨, 34억 원 소송 1982년 전두환 

'간첩 조작'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차풍길 씨가 

국가를 상대로 34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17. "간첩으로 조작"/목포 1980년 전두환 
 
 
지난 80년 전남 진도군 중림마을의 이른바 고정 간첩단 사건,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조작 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8. '간첩사건' 강희철 씨, 재심에서 무죄 판결 1986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희철 씨에 대해 법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간첩 누명을 벗기까지 무려 22년이 걸렸습니다.
 


19. "고문 간첩 피해 김복재씨 유족에 20억 배상"


국가기관의 조작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던 피해 유족에게 국가가 2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광주지법 민사4부는 간첩으로 몰렸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복재 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들에게 19억 9천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0. 간첩 누명 김양기 씨 23년 만에 무죄 1986년 전두환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한 뒤 간첩으로 몰렸던 김양기 씨에게 2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21. '간첩누명' 최양준씨 28년만에 무죄 확정
 
 


22. 부산지법, 간첩혐의 신귀영일가 재심서 무죄(종합)

 
1980년 간첩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신귀영(74) 씨 일가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2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23. 5공시절 '오송회' 사건, 26년 만에 무죄 판결 1982년 전두환 
 
 
5공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오송회 사건 관련자들이 26년 만에 누명을 벗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서 사죄했습니다.


 
24. '간첩누명' 재일교포 이헌치씨 재심서 무죄  1981년 전두환

서울고등법원은 공작지도원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돼 15년간 복역한 

재일교포 이헌치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5. '간첩 누명' 재일교포 이종수씨 재심에서 무죄 1980년 전두환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5년 8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던 재일교포 이종수 씨가 낸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6. '간첩 누명' 고문 사망자 26년 만에 배상 1985년 전두환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 끝에 사망한 30대 어부의 유족에게 26년 만에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27. '간첩 누명' 김기삼 씨 29년 만에 무죄 1980년 전두환 

 
옛 안기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김기삼 씨가 29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습니다.




28. 마지막으로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무죄 판결 난 껀만 28건임. 힘없던 외딴 섬 사는 사람들이 많이 당했고

국가권력으로 행해진 일이라 말도 못하던 사람들도 많았음.



변호인측에서 증거가 오염됬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검찰은 반박 못하고 있고

그런데 재판이 우습냐고? 신뢰의 문제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