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 다닐 때 맨날 술 쳐먹고 이 자취방, 저 자취방 놀러다니다가 시험 전에만 열람실에서 이틀 밤새며 2점 후반~3점 초반 학점 관리하던 흔한 학생이었음. 괜찮은 여학우들에게도 들이대고 차이고 눈물 흘리면서 시내에서 xx야 사랑한다고도 외쳐본 ㄹㅇ 남사친만 많은 아싸와 인싸 그 중간의 학생이었음(본문과는 관련1도 없지만 그냥 한번 써봄).

1학년때 과대에게 들이대다가 응 그래도 너같은 찐따새끼는 안만나라는 바이브를 몸소 경험하며 그래도 황송하게 학년 공지른 접할 수 있었던 애매한 포지션에 있었음.

2학년 1학기를 다녀본 몇몇 남학우는 이해할텐데 나랑 같이 찐따 바이브 뿜뿜하면서 마 이게 대학생활이다라며 방탕하면서도 주류에는 어울리지 못한 ㄹㅇ 찐친(찐따친구지만 서로 뭉쳐야만하는)들이 군대로 도피함.

이쯤되니 서로 찐따력을 보듬어주며 으쌰으쌰가 안되니 복학생 하이에나들의 자존감 챙기기 희생물이 되거나 여학우들의 짐꾼, 잘하면 술자리에 한번 껴주는 정도의 포지션으로 정착함.

마침 새학기가 시작되며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중요 전공과목을 맡게 되셨는데 소문에 의하면 완전 FM에다가 피도 눈물도 없이 정시 지나면 강의실 문 잠궈버려서 결석 처리되고 교재없거나 노트없어서 빈 종이 한장 달랑 들고오면 내쫒아버리는 무서운 분이셨음.

실제로 학기중 여러 명이 쫒겨나고 쫒겨날 때마다 무서운 3학년 형들이 강의 끝나고 들어와서 막 혼내기도 하고 너네들이 그러면 우리도 혼난다고 그러던 수직적인 관계가 완전 박혀있는 상황이었지.

그렇게 강의 한번 한번이 살얼음판이었는데 리포트늘 내줬음. 상대평가인 만큼 중간, 기말만큼 리포트 점수가 중요했고 하물며 핵심 전공과목이었으니 긴장됐지. 리포트는 그 당시 진도 나가고 있는 주제에 관련된 원어 논문을 싹 다 번역하고 거기에 대해 총평을 하는거였어. 적어도 10페이지 이상의 학술지 논문이 기본 조건이었는데 그걸 2학년 1학기 학생한테 시켰다는건 그냥 성의와 싹수를 보기 위한 거겠지.

아무튼 쉽지않은 리포트로 서로 걱정하는 말들을 하는 와중에 찐따였던 나는 정보 교류를 못하고 자취방에서 와우를 하고 있었어. 내 눈빛이 우수에 차있다라는 선문자를 보내는 여자 신입생 후배의 연락조차 무시할 정도로 빠져있었지. 술이 덜 깨서 반개한 흐리멍텅 눈빛을 좋게 봐주는 것에 고마워해야했겠지만 도적으로 공대의 고정적인 일원이 되려면 그런 텍스트 쪼가리보다 보라색 템이 중요했던 때였어.

맨날 같이 다니고 서로 생일 챙겨주고 장난치다가도 잘 생겼다 이쁘다 낯간지러운 소리하면서 사귀고 헤어지고 생쇼를 하던 인싸 놈들(내가 아싸여서 화난건 아님)은 리포트도 지들끼리 분량 맞추는 적절한 논문 찾아서 과탑 주도 하에 뚝딱하더라고. 그러다가 각자 친한 애들 한명한테 공유해주고, 또 그 친구는 다른 애한테 공유해주고 그러더니 학년 중 2/3가 똑같은 논문을 똑같은 내용으로 준비했더라고(아싸라서 몰라서 나중에 알았음). 좀 얍실한 놈들은 초록만 좀 바꿔서 준비하고.

나는 공인 아싸 3인방 중 좌익을 담당하던 아웃 오브 안중이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 제일 만만한걸 찾고 3일 빡 집중해서 간신히 기한 맞춰서 냈어. 그 3일동안 와우 공대 못 나가서 다른 도적한테 공대 자리 뺏기고.

공교롭게도 내가 한 논문이 인싸적폐들이 돌려 쓴 논문이랑 똑같은 논문이더라. 제출 이후 다음 강의때 교수님이 들어와서는 인싸적폐들 리포트 점수 다 최하점이라고 공표하더라고(기말, 중간 만점맞아도 B+). 순식간에 강의실 분위기 곱창나고 전장이던 과탑은 울음쓰나미.

그리고 해당 안된 학생들 한명씩 교수실로 부르더라고. 내 차례가 되어서 긴장한 채로 들어갔는데 딱 첫마디가 그러더라고. 넌 니가 직접했냐? 그래서 난 최대한 찐따 바이브를 숨기고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제가 100프로 직접했습니다. 만약 한 문장이라도 다른 사람과 같은 문장이 있으면 저도 그냥 최하점 주세요라고 했지. 그러니까 교수가 피식 웃더니 내가 낸 리포트 논문 번역본에 오역 수정하고 주석달아놓은거 띡 주더라고. 이 정도면 잘 했다고. 점수도 최고점 받았어.

그 교수 그러고는 복학해도 아는 척도 안하고 맨날 저런 아싸새끼라는 눈빛만 주더니 졸업하고 취직 못해서 뒹굴때 조교 통해서 말 전달해주더라. 어디 자리 봐놨으니 거기가서 누구 만나라고. 그리고는 취직했어. 그리고 11년째네.

다음 달 스승의 날인데 선물 뭐 사야될지 귀찮아 죽겠어. 골프웨어 좋아한다고 해서 매년 골프웨어만 사드렸는데 올해도 슬슬 고민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