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전, 로마 시대에는 목욕이 매우 성행했습니다.

로마 시대의 공중 목욕탕은 단순한 목욕의 개념을 넘어 사교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교를 넘어 이후에는 매춘 등이 공공연하게 벌어졌기 때문에 퇴폐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 성직자들이 씻지 말라고 강요한 건 아닙니다.







로마의 목욕탕은 물갈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대량의 온수를 수시로 갈아주는 건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일입니다.

근대 이후 석탄과 석유라는 연료를 상용화하기 전까지,
물을 데우는데 필요한 장작의 비용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처럼 커다란 규모의 목욕탕이라면, 물을 데우는데 필요한 비용 또한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이유 때문에 목욕탕에 채워진 물은 사람들이 씻고 난 뒤의 노폐물은 물론이고
분변의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현대까지 남은 당시의 흔적을 분석한 결과
로마의 세력권 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확률로 기생충에 감염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요.
이러한 기생충의 광범위한 전염에는 공중 목욕탕도 큰 이유가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목욕이 위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다
앞서 말한대로 퇴폐와 윤락의 온상이기까지 했으니
이후에 등장한 성직자들에 의해 기피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온천이 존재하는 북유럽의 경우라면 몰라도
중부 유럽의 경우에는 물 자체도 석회수인 경우가 많아서
목욕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도 또 한 가지 이유가 됩니다.

기껏 힘들게 몸을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으니까요.




결정타는 바로 흑사병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위생 관리가 없는 목욕탕은 오히려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 쉬웠습니다.
실제로 아즈텍에 천연두가 만연하게 된 이유 또한 이런 식으로 위생적이지 못한 목욕탕 때문이었습니다.




흑사병 이전에는 이런 식의 남녀혼탕도 있었지만
이후에는 싹 사라지게 됩니다.







전후 사정 없이 그냥 이런 내용만 보면
저게 뭔 헛소린가 싶겠지만...

알고 보면 그냥 맥락 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세균의 개념을 몰랐던 당시 사람들로서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