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냉전의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해있을때,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친애하는 안드로포프 서기장님께.

제 이름은 서맨사 스미스이며 10살입니다. 새 직업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 전쟁을 할까봐 걱정해왔습니다. 서기장님은 정말 전쟁을 하실건가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실건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서맨사 스미스 올림"

 

 

 

이 편지는 미국 메인 주에 살고 있던 만 10세의 소녀인 서맨사 스미스가 보낸 것으로,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강대국 소련의 지도자인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 편지는 소련 당국의 검열 과정에서 탈락해 안드로포프 앞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1983년 4월 12일 소련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에 실렸고, 이를 본 안드로포프가 친히 답장을 써 4월 26일 서맨사에게 전달됐다.

 

 

친애하는 서맨사 양에게.

최근 저는 서맨사 양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서맨사 양은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소설책인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베키를 닮은, 용감하고 정직한 소녀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 소련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 맨사 양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핵 전쟁이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죠. 그리고 전쟁 발생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건지 물어봤습니다. 서맨사 양의 질문은 전세계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기에, 저는 정직하게 답하고자 합니다.

예, 서맨사 양. 소련에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떠한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소련 사람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창시자 레닌이 가르쳐준 것이기도 하죠.

소련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습니다. 42년 전, 세계 정복을 노렸던 나치 독일은 소련을 공격해 수많은 도시와 마을을 불태우고 소련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결국 그 전쟁에 서는 우리가 이겼고,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소련은 미국과 함께 나치로부터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싸웠습니다. 서맨사 양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이 부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가깝든 멀든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며 평화 속에 살아가길 원합니다. 미국과 같은 큰 나라와는 더더욱 말이죠.

미국과 소련에는 한 번에 수백만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핵무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핵무기 사용을 원치 않습니다. 소련은 절대로 먼저 핵무기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한 바 있으니까요. 우리는 핵무기 추가 개발을 중단하고 지구에 있는 모든 비축 무기의 폐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서맨사 양이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한데 대해서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봅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간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노동자, 농민, 작가, 의사, 어른, 정부 각료 중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우리는 밀을 경작하고, 무언가를 건설하고 발명하며, 책을 쓰고 우주여행을 하는 그런 평화를 원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모든 아이들을 위해, 또한 서맨사 양을 위해서도요.


만약 서맨사 양의 부모님이 허락한다면, 서맨사 양을 이번 여름의 적절한 시기에 우리 소련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바다에서 국제 어린이 캠프인 Artek에 방문함과 동시에 서맨사 양은 우리 소련에 대해 알게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 소련에 있는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서로의 우정을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하세요.

편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맨사 양의 젊은 시기에 행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길 바랍니다.

유리 안드로포프.

 

 

보다시피 유리 안드로포프는 단순히 답장을 보낸 것을 넘어, 서맨사와 그녀의 부모를 소련에 공식 초청하였다. 미국 일각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술책에 넘어가면 안된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 소녀와 소련 지도자간의 서신 교환 자체가 갈수록 첨예해지던 냉전 체제를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기에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마침내 1983년 7월 7일 서맨사 스미스와 그녀의 부모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7월 22일까지 머물렀다. 공항에는 수많은 환영인파가 나왔으며 소련에 도착한 심정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서맨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씩 웃고는  "спасибо(스파시바;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안타깝게도 서맨사는 안드로포프를 만나지 못했다. 안드로포프의 건강이 악화됬었기 때문. 그래도 서맨사는 마크 트웨인의 연설집을 안드로포프에게 선물했고, 안드로포프는 와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서맨사의 방문을 환영했다.

서맨사의 소련 방문은 당시 동서 진영의 긴장과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희망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서맨사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불과 7개월 만인 1984년 2월 안드로포프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인 1985년 8월 서맨사마저 비행기 사고로 숨지면서 전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한 소녀의 아름다운 여행은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

 

 

소련에서 서맨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발행한 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