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3년 3월 7일 비무장지대 내 표지판 보수작업을 실시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던 우리 장병에게 북한이 기습사격
대위 1명과 하사 1명이 중상으로 쓰러짐


2. 박정인 사단장은 마이크로 북측의 사격중지를 재차 요구 함과 동시에,
차후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민군측에 있다고 수차례 경고
북이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된 사격을 하고, 고립된 우리 부대원들은 목숨이 경각에 몰린 상태


3. 박정인 사단장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독단으로 관측기를 상공에 띄워 북측 GP의 위치를 파악한 후
휘하의 105mm, 155mm 곡사포를 모두 동원하여 인민군 559GP에 포격을 단행.
이어, 북한군 보병들 배치지역까지 연이어 포격


4. 부상병 구출을 위해 연막탄을 발사
연막탄으로 일대에 불이 붙자 지뢰들이 유폭되어 폭발
북한군은 달아나고, 부상장병 무사히 구출


5. 상부 군단에서는 이를 알고 포격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박정인 사단장은 상부의 포격중지 명령을 무시하고 부상병을 구출 할때까지 포격을 계속함


6.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정인 사단장은 그날 밤 사단내 모든 트럭에 라이트를 켜고,
한꺼번에 DMZ 남방 한계선까지 돌진하도록 했고, 일부 차랑은 군사분계선까지 밀고 갔다고..


7. 2년뒤 북한에서 귀순한 인민군 장교의 증언에 의하면, 이날 박정인 사단장의 포격으로,
북측 사망자만 36명 이었고, 김일성은 이날 박정인의 DMZ 트럭돌격을
북침으로 여겨서 전군 비상령까지 내렸었다고...


8. 군 수뇌부는 이날 박정인 사단장의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해임 시켰으며,
박정인 사단장은 불명예 제대.


9. 박정인 사단장의 회고록에 의하면...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북한 공산당들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자에겐 더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포격을 퍼붓는 동안 그들은 단 한발의 포도 우리쪽에 발사하지 못했다."


10. 해임되어 사단장직에서 내려오던날 박정인 장군의 이임사
"북진통일의 성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국민의 군인으로서 국민에게 죄를 짓고 사단장 직을 떠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백골 부대 사단 장병은 나의 의도를 받들어 북진통일의 선봉사단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당부하며 백골사단의 건승과 장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