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강원랜드, 우리은행 등에서 잇따라 불거진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전방위적 '메스'를 들이댈 태세이다.

'전수조사', '민형사상 책임', '채용 무효화·취소', '재발 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등 평소 절제된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하며 공공기관들을 질책했다.

채용비리를 질타하는 문 대통령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경제의 호조세를 언급하며 웃음을 보였으나, 공공기관 채용비리로 화제가 전환되자 이내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이례적으로 질타한 배경에는 이 문제가 단순히 소수의 청탁자와 피청탁자 간 개인비리 차원의 문제로 여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채용비리 문제는 공공기관 상당수에 마치 암세포처럼 깔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며 "개인비리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보고 해법을 찾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출발선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반사회적 행위이자 대표적 불공정 행위로 국민적 불신과 갈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근절방안을 논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중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전체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와 '청탁자와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엄중한 민·형사 책임'을 언급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채용비리라는 적폐를 고리로 공공기관에 대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발언은 채용비리에 국한한 발언으로 공공기관 사정까지 염두에 두진 않은 것으로 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채용비리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엄중하게 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고강도' 발언에는 새 정부가 청년 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 채용비리 문제로 상처 입었을 청년층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나타난 청년층의 여론을 분석해보면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며 "지난주 현안점검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대통령께도 청년층 여론에 대한 보고가 들어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