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런 공간에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글로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타인의 눈으로 그 현장을 보았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았던 모습들.

처음 팽목항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비옷 같은 옷을 입고 바다를 향해서 쉰 목소리로

돌아와 제발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

라고 절규하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는 애써 외면하며 지나쳐야 했습니다.

어떤 위로나 말을 건넬 수도 없었겠지만 그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니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슬픈 일도 많이 겪어 보고 또 나름의 괴로운 일도 감당하며 살아왔다지만

뭔가 다가설 수 없는 그런 비현실적인 게 있었습니다.






차가웠던 아이들.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옮기고 난 뒤 다음 아이들을 옮기기 위해 유가족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흰색 티셔츠에 검은색 청바지 그리고...

내 아이가 아닐까 줄서서 기다리며 듣고 있던 유가족들은

인상착의가 하나라도 맞다 싶으면 들어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나오던 사람들과 

안에 머무른 사람들...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울었습니다.

울지 말아야 하는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 슬픔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눈물을 닦으면서도 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 그들의 슬픔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위로한다 한들 뭐 하나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지.

지금 내 허리가 너무 아프니까 빨리 교대해 주는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네.

제대로 된 인원조정도 없이 이게 뭐하는 것일까.

눈물을 닦으면서 그렇게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싶었습니다.






이름들.

이름이 기억납니다.

누구야 누구야 이름을 외치며 울부짖던 유가족들 때문에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은이었나...예진이었나...

다시 눈물이 흘렀지만 내게는 중요하지 않은 이름이었습니다.

눈물을 닦으면서 예쁜 아이였는데 이름도 예뻤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겐 중요하지 않은 이름이니까 눈물도 금방 말랐습니다.






집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해 1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있었습니다.

너무 예뻐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건 만만치 않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상한가 아니면 덜 커서 그런 건가

집사람과 내가 힘든 게 더 크게 느껴질 뿐

아이가 주는 행복이 그 힘듦을 전부 기쁨으로 치환하지는 못했습니다.

부부의 삶 속에 아이라는 건 어쩌면 의무의 연장선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낳자마자 눈물 흘리고 하는 아빠들은 다 작위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영상도 많이 찍었습니다.

다시 볼 틈도 없이 데이터는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다시 볼 일이 생겼습니다.

신기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육아가 힘들어서 아이가 얼른 크기만을 바랐는데

그랬는데 막상 더 어린 날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마냥 기분이 좋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습니다.

내가 만지고 대화하던 오늘 내 딸의 모습은

내일이 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많이 슬펐습니다.

지금 모습도 너무 예쁜데 지난 날의 모습도 또 다르게 예뻤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예뻐해 주지도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어제의 내 딸은 더 이상 없는 거구나.

오늘도 예쁘지만 어제도 예뻤는데

어제의 딸은 사진으로만

데이터로만 만날 수 있는 거구나.

별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슬펐습니다.






이름을 불렀습니다.

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품에 안으면 그 따뜻함과 향기가 너무 포근했습니다.

이렇게 예쁘게 커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슬픔 없이 자라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렇게 아빠가 지켜줄 거라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유민 아빠.

그의 모습이 방송에서 나왔습니다.

단식을 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가죽만 붙어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렇게 말라 가던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엔 유민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저 사람도 딸아이 아빠구나

하고 관심을 더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여위어 갔지만

눈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움이 느껴졌지만

애써 공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 잘 해 내겠지.

마음속으로만 응원했습니다.






이제 지겹다.

그만하자.

직장에서도 쇼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가족들이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돈 더 달라는 말을 왜 못 하냐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교통사고를 가지고 왜 저렇게 난리치는지 모르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랑을 마다 않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자식을 둔

아빠 엄마였습니다.




아빠.

딸아이가 제법 빨리 아빠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아빠아빠아빠아빠

그렇게 말문이 트이자 참새처럼 짹짹거렸습니다.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란 게 어떤 건지

이제 알 수 있었습니다.

의식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고

생물학적인 관계로 비롯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세월이었습니다.

아이가 울면

안절부절 못해 하던

아이가 아프면

한없이 눈물 흘리던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 하던 그녀를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집사람과 딸에게 계속해서 미안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더 잘 해 줄 수 있었는데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는데

더 안아줄 수 있었는데

더 못해 준 게 계속 생각나는 시간들.

나는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야

아빠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모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잊지 않을게.

유민아빠의 단식은 끝이 났습니다.

같은 아빠로서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추모곡이 나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덤덤한 마음으로

잊지 않을게

라는 추모곡을 들었습니다.

소파에 앉아 유투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그려진 유민아빠

그리고 어린 날의 유민이를 봤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어제의 내 딸이 생각났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민이를 볼 수 없는

유민아빠가 생각났습니다.

울음이 터졌습니다.

이건 내 슬픔이 아닌데

그만 울어야 되는데

펑펑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원 없이 울었습니다.

내 슬픔이나 마찬가진데

내 아이를 생각하면

울어도 되는 거니까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내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습니다.

집사람은 내 옆에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주었고

나는 계속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

이제 다시 그날입니다.

동생의 마음으로

형의 마음으로

누나의 마음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누군가의 마음으로

그렇게 잠든

아이들을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아이들아, 그때 아저씨가

더 많이 울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