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이 상당히 핫합니다. 첫 3일간은 변변한 기사도 나지 않던 사건이었지만, 인터넷에서 뜨거운 논란으로 번지면서 이번주 들어서는 공중파 방송까지 타고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본래 몰카라는 이슈를 선점하고 있던 페미니즘, 여성주의 진영이 놀라울 정도로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침묵하는 정도를 넘어서 오히려 몰카범을 신속하게 검거한 경찰에게 비난에 화살을 집중하고 있지요. 논리는 '여성 몰카는 수사하지 않고 남성 몰카만 수사한다'는,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봐도 거짓임이 빤히 드러나는 저열한 선동입니다.



뭐 페미니즘 진영에 있어 선동과 날조는 숨쉬고 밥먹는 것과 같으니 이 부분은 솔직히 말해 지적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들의 도식에서 피해자인 남성 모델이 완전히 배제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범죄 중에서도 특히 성범죄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수사와 재판, 언론보도 등 사건을 다룸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사건의 진행과정 중에 피해자가 또다른 불이익을 겪는 소위 '2차 가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의도로부터 비롯된 주장입니다만 '미투'를 위시한 허위신고가 만연하는 현 시점에서는 페미진영이 범죄 사실이 증명되기도 전에 그들이 2차 가해라고 주장하는 피의자의 변론을 틀어막는 용도로 흔히 사용됩니다.

그런데 홍대 몰카 사건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대응을 보면 평소에 그리도 주장하던 이 피해자 중심주의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메갈, 워마드 일당은 오히려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그 소재로 대회(!)를 주최하는 등 건국이래 최대급의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으며 여성가족부를 위시한 제도권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에는 아예 피해자가 언급되지를 않습니다. 여가부의 정현백 장관도 '여성폭력에 대한 수사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몰카 피해자의 존재는 가볍게 스루한채 거기에 곁다리로 부속된 수사 논란을 언급했지요.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사안이기 때문에 덮어두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반만 아시는 겁니다. 유불리를 떠나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비단 이 사건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관점에 있어 남성의 불행과 여성의 불행은 그 가치가 같지 않은 겁니다. 이 점은 현재 페미니즘이 관여하고 있는 거의 모든 쟁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는 딴지일보 유저가 시행한 제도권 페미니스트 인터뷰 중 미투 관련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미투의 악용에 따른 무고한 남성들의 피해에 대해 인터뷰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희생과 같은 어쩔 수 없는 피해이며, 설령 죄가 없다 하더라도 무고죄 고발은 미투를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의 취지는 피해를 당했음에도 이를 밝히지 못하는 억울함으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피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피해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성할당제를 들 수 있습니다. 여성할당제의 시행 취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채용에서 배제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할당제는 필연적으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채용에서 배제되는' 사례를 만들어낼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셈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할당제가 정당함을 넘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여성혐오자로 매도합니다. 역시나 그들이 남성이 입는 피해와 여성이 입는 피해의 가치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증거입니다.

만인의 평등은 현대 민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도덕적 원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페미니즘이라는 필터가 가미될 때 남녀의 가치는 달라지고, 이는 인간의 비극에 대한 윤리적 반응을 왜곡시킵니다. 자신의 신체가 온라인 공간에 노출되어 말 못할 고통을 받는 피해자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페미니즘에 경도되면 이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메갈과 같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오히려 잔인한 만족감에 젖으며, '온건'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젠더 감수성'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고, 비극을 똑같은 비극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젠더 감수성이 풍부하다'며 칭송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