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주변을 순찰하고 활보를 하고 다녀도

조선의 농부들은
밭에서 평화롭게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군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왜 그런
걱정을 하겠는가?

일본군보다 조선 정부가
더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데,

조선 정부는 마지막 푼돈에
마지막 쌀 한 톨까지 빼앗아가지 않았나.
(헤세 바르텍, 조선 1894년 여름 p.75~76)

서울로 연결된 길은
매우 초라하고 다니기가 힘들어

처음 서울을 방문하는
이방인을 놀라게 했다. (p.76)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마치 황량한 황무지와도 같았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황토빛 초가집 투성이에

도로도 없고, 고층 건물도 없고
나무들과 정원도 없었다.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이 광경은

야성적으로 솟아 있는 주변 산들로 인해
숭고한 인상마저 준다. (p.77)

그런데 황토빛 도시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을 발견했다.

푸른 나무들도 보이고
여기저기 번듯한 기와집도 보였다.

헤세 바르텍
"저 건물들은 뭡니까?"

통역
"왕궁입니다."

헤세 바르텍
"왕궁이라고요? 저게?"

왕궁이라는 말에
다시 느낌이 180도 달라졌다.

그러니깐 이 작고
눈에 안 띄는 건물들이

500년 동안 조선을 지배해왔던
이씨 왕조의 궁궐이라는 것이다!(p.81~82)

서울의 길은 좁기 때문에
그 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길들을 여럿 놓아야 했으니
길이 마치 미로 속과 같았다.

집들은 오물과 쓰레기를
그대로 집 앞에 버려 상당히 더러웠고

7~8세의 발가벗은 아이들이
길에서 그냥 용변을 보는 일이 흔했다.

여름철 집 안은 너무 덥고 습하고
어둡고 해충도 많아서

사람들은 모든 집안일을
길거리에서 처리하고

밤이 되면 집 앞의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잔다.

하지만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조그만 산을 이루고 있고,

피해갈 수 없는
더러운 녹색 웅덩이들이 있었다.

비라도 오면 복사뼈까지
진창길에 빠지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p.91)


25만 명이나 거주하는
전 세계 대도시 중에서

5만여 채의 집이 대부분
초가지붕의 흙집인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거리로 그대로 하수가 내다 버려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서울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대소변을 직접 거리로 내다 버린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

종교도, 사원도, 가로등도, 상수도도,
마차도, 보도도 없는 국가가 있을까? (p.83~84)


남자들이 집 앞에서 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고, 노는 동안

여자들은 집 안이나 마당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힘든 일도 척척 해냈다.
끙끙거리며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보면
이미 조선의 여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p.201)

바로 여기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일수록
문화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p.87)

사실 조선인들은, 열심히 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무엇을 위해 일한단 말인가?

조선 남자의 욕구는
그리 크지 않다.

그저 조그만 집에
소박한 살림 도구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