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는 애초에 시작부터 뿌리가 기독교에 오염되어 있다. 본래 유럽의 진보도 그런 측면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에 거쳐 어느 정도는 걸러내 온걸로 보인다. 물론 유럽진보도 여전히 그 흔적은 강하게 남아있는 게 목적론적 세계관이나 일차원적인 발전관 같은 유치한 사고방식이 그런 것임. 이건 유럽의 계몽주의 자체가 기독교적 토양을 속에서 생겨난 것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한계였음.


그런데 한국 진보는 그 밀월관계가 더 긴밀해서 여성계와 기독교 세력의 결합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물론 비주류 메갈에게는 기독교적 성향은 직접 들어나지 않고 반기독교적 성향도 보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유럽의 중세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볼 수 있고 특히 주류 여성계와 그 토양인 yw나 민우회 같은 곳에 기독인들 드글드글하다. 이건 여성들이 유독 난민에 대해서 결사반대하는 성향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래서 진보라는 것들이 보수 기독교 눈치 보느라 섹스와 낙태와 여러 문화산업에 대해 상호호혜적으로 히 통제를 심하게 하는 모순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임.


또 하나의 태생적 문제가 있는 이건 훨씬 심한 부분인데.. 그것이 바로 감상주의. 


오랜 시간 동안 평화지향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폭력이나 사건사고에 대한 특유의 두려움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외국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수십분의 일 밖에 안될 정도로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흉악범 그리고 먹거리나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세월호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그래서 저런 국민의 성향이 감상주의에 맞물리면 광우병의 과장과 오해에서 여성의 성적 희생에 대한 과장된 여론을 만들어 내고 그런 여론이 특히 민감하게 작용하는 계층들 중심으로 정책화가 되면서 평범함 성추행이 살인죄에 준하는 수준의 사회적 처벌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연일 흉악한 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가 끝이지 않는다.


이런 감상주의는 배와 배꼽을 뒤바꿔서 여성인권을 위해 다른 인권을 우습게 내던지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또 태양에너지 발전에 대한 과대포장을 만들어서 국가산업의 전략에 고민은 없이 에너지 정책을 함부로 건들고 근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코앞의 처방만으로 경제 민주화가 이뤄질 것처럼 순진한 믿음을 확산시킨다거나 등등 문제가 한 둘이 아닌데도 여전히 감상주의에 사로잡힌 삐툴어진


감상주의는 정치의 적이고 진보의 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진보는 기필코 감상주의와 함께 죽자고 하고 그걸 못 버리니 나는 차라리 그런 진보를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