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660년 백제가 멸망하기까지 백제인이란 정체성은 갖지 않았던게 마한지역임

-> 견훤이 광주에서(당시명 무진주) 거병하고 후백제(역사기술에 있어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후 백제 라 칭하지만 당시엔 그냥 백제 였음) 라고 칭하고 그 지역민과 호족들이 호응했는데 설명해 보길 바람. 더구나 견훤은 순천호족과 결혼동맹을 맺음. 왜 견훤을 도와 거병한 전라도지역은 마한이라 하지 않고 백제라 했을까


백제무왕 당시 사비에서 익산으로 천도를 하려고 왕궁도 짓고 거의 모든 준비를 했으나 끝내 천도를 이루지는 못했다.(혹자는 무왕시대 익산으로 천도 했으나 무왕사후 다시 사비로 돌아왔다고 하기도 한다) 강력한 왕권으로 무왕은 사비의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익산호족을 등용했고(외척도 익산호족) 익산으로 천도까지 밀고 간거지. 이와 비슷한 임금이 조선시대 정조가 있지. 정조는 화성에 수도를 건설하고 천도를 추진했지만 무산되었다.

여기서 익산이 지금의 전라도 지역이다. 그리고 익산은 무왕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고 (사실 사비와 익산은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거기에 무왕의 왕위 등극에 절대적인 지원자이고 후견인이 된 호족이 익산호족이고 의자왕은 무왕의 아들이고 (무왕이 굉장히 뜬금없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아예 무왕을 기존 백제계통과 전혀 다른계보의 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익산호족 출신이라는거지)

5세기 동성왕 이후로 마한지역은 백제에 점차 통합된것으로 보이고 이후로는 전라도는 백제라고 해도 됨. 그 이전은 마한이라고 보는게 맞고 (한반도가 마한진한변한, 즉 삼한시대였을 땐 이 마한이 삼한의 맹주국가였음, 그 마한의 정통성은 고조선에서 부터 이어짐, 고조선 준왕이 위만의 쿠테타로 남하해 정착한게 마한이거든, 즉 고조선에서 마한으로 우리 역사의 정통성이 이어지고 그리고 삼국과 고려 조선으로 가는것임. 마한을 빼고 고조선을 얘기할 수 없는거지)

암튼 뭐든 어설프게 아는게 제일 웃기고 병신스러워 보임
니 논리대로면 가야는 신라멸망시까지도 가야의 정체성을 유지했고
통일신라시대 백제나 고구려 출신은 통일신라 멸망시까지도 백제나 고구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라고 해야해 (물론 너는 아직도 자신을 한국인이 아닌 신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아는 초보자가 자기의 개인적인 기대나 바램을 자꾸 역사에 투영시키려 하니까 무리수가 나오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