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영욱 개발자


한 가지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분명한 성과가 나왔을 때 가능하다. 오늘 소개할 오영욱 개발자는 그 정도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굵직한 인물의 입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 기자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게임 잡지를 모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출시된 웬만한 게임 잡지는 다 모았다. 게임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PC 잡지도 약간의 게임 정보가 포함된다면 일단 수집한다.

또, 자신과 마찬가지로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해왔지만 알려지지 않은 인물, 혹은 기록들을 재조명하는 중이다.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보았겠지만, 누구도 선뜻 시도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수집가는 많다. 밀봉 상태의 잡지를 산처럼 쌓아 둔 인물도 찾아 보면 상당하다. 하지만 오영욱 개발자는 어렵게 구한 잡지를 수납장에 꽂지 않았다. 한 장 한 장 찢어 이미지화를 거쳐 데이터베이스로 기록했다. 자신의 수집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예전부터 기록되어 왔던 방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정리한 뒤 모두를 위해 공유하는 게 목적.

한때는 네오플에서 '던전앤파이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던 오영욱 개발자. 자신은 천재가 아니기에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천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홀로 묵묵히 걷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 잡지에서 페르시아 왕자 프리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잡지를 정말 많이 모았더라. 이것만 다 읽어도 게임 관련 지식이 상당할 게 아닌가. 프로그래머 뿐 만 아니라 다른 분야 욕심내도 될 것 같다. : 뭐... 그런 욕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아예 분야가 다르니까. 난 기획자가 얘기할 만 한 걸 얘기하는 역할이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 캐치해서 보여주는 쪽? 이런데 최적화된 거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 책임감 같은 건 기획자에게 떠넘기고 난 개발하는 걸 즐기는 거라고 해야 하나(웃음). 어쨌든, 기획 쪽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디 게임 분야는 특히 관심이 많이 가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몇 권이나 수집한건가? : 글쎄... 정확하게 세어 본 건 아닌데... 페이지수가 43만 페이지니까... 음, 스캔한 책을 권 수로만 치면 한 1,700권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전체 하드 용량이 2.1테라바이트다.


전부 다 읽었나? : 무슨 소린가. 다 읽지는 못했지. 읽으려고 모으는 것 아니다. 수집 자체가 목적이다. 뭐, 일단 스캔하면서 좋든싫든 보기는 하지만... 아 이런게 있구나 정도지 세세하게 다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거 다 모으면 자료로도 쓸 수 있겠다. 데이터로 만드는 거니까. :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라. 지금 이게 다 이미지인데... OCR이라고, 이미지 문서에서 텍스트를 추출해내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거다. 그런데 잡지는 그림이 많아서 OCR이 쉽지가 않다. 또, 1,700권이나 되다 보니 개인이 하기에 힘든 부분이 많고. 중고 거래가가 오천 원에서 만원 정도는 하니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뭐, 일단 목차만 따로 빼서 작업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웹에서 이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하나하나 스캔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다. : 그렇긴 하지만 사실 이런 취미 가진 분들은 찾아보면 많다. 나랑 다른 점은... 그 사람들은 평판 스캐너에다가 책 눌러가면서 스캔한다는 거겠지. 책 파손 안하는 게 목적이니까. 나는 책을 잘라서 스캔하고... 자른 뒤에는 버린다. 어쩔 수 없지. 창고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권 수가 워낙 많다보니.


단순히 체력만 갖고는 못할 일 아닌가. : 반 쯤은 사명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덕짓이지. 이게 취미생활이 되었으니 하는 거다. 대충 하루에 1.7권 정도 스캔하는 것 같다. 게임 잡지만 보면 90% 정도 했고.

▲ 해체 작업이 완료된 잡지들은 OCR 방식으로 데이터화된다

▲ 게임 관련 만화도...

▲ RPG 전문 잡지도 모았다


처음에 잡지를 모으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난 PC 게임 하면서 자란 세대다. 그런데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 흐름이 끊겼다. 국내 게임업계 역사를 돌이켜봐도 PC 게임 개발자 분들은 온라인 게임 개발자 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김학규 대표, 이원술 대표와 같은 네임드만 알려지고 함께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몸으로 때운 분들인데. 솔직히 그들도 아쉬움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서 시작한 게 이 일이다. 그들을 기억해야 하지 않나. 처음에는 그냥 스텝롤 정리 정도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살이 붙어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무모한 도전 아닌가. : 무모했지. 소프트맥스 게임 같이 유명한 작품들은 구하기 쉬운 편이다. 그런데 막상 제대로 찾으려고 하니,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게임을 전부 구하는 게 무리라고 생각해서 게임 잡지로 방향을 튼거다.

게임 잡지들 쭉 모으면서 보니, 컴퓨터 학습, 마이컴, 이런 잡지에도 옛날 게임개발자 인터뷰가 실려 있더라. 그래서 PC잡지들도 같이 모았다. 그러면서 하이텔, 나우누리에 올려져 있던 관련 자료들도 백업을 시도했다. 거기에 한국 게임업계 기반 닦아 놓은 분들이 많았으니까. 난 프로그래머다. 사라지기 전에 매크로 짜서 텍스트 정리하고 그랬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던 것 같다.


이렇게 자료를 다 모은 뒤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 도서관... 온라인 도서관같이 만들고 싶다.


박물관이 아니라? : 박물관은 전시니까. 난 내가 모은 자료들이 지식으로 남아 계속 전해지길 원한다. 왜, SF 판타지 도서관 같은거 있지 않나. 나도 그런 콘텐츠 도서관의 느낌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다. 새로운 것 아닌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그런 목표의 일환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얼마전에는 내가 지금까지 스캔한 자료들을 넥슨 박물관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기증? 지금까지 모은 걸 공유했다는 건가. : 물론, 내가 아무한테나 자료를 막 준다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후원해 준 분들께 먼저 나눠드리고 있다. 또, 내가 아는 분들에 한해서 정말 필요한 경우에 드릴 때도 있고. 생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막 뿌리면 컨트롤이 안되지 않나.

사실 토렌트에다 풀면 그야말로 확 퍼지겠지. 그런 생각도 안해본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정보가 퍼지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로 인해 콘텐츠 제작자들이 손해보면 안되니까 그렇게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용량도 제법 큰 편이고, 그동안의 노고도 있지 않나. 자료 보관 방식도 섬세할 것 같다. : 일단 웹하드, 그리고 외장하드에 카피를 보관 중이다. 뭐, 만약 내가 교통사고라도 당한다 해도 큰 걱정은 없다. 넥슨 박물관에도 자료가 있으니까.


수집이 가장 어려웠던 잡지는 무엇이었나? : 음... 다 비슷한데... 아무래도 게임월드가 아닐까. 창간호는 어찌어찌 구입은 했지만, 아직 스캔을 못한 상태이고 10호, 20호 쪽도 못 구한 게 많다.


어렵게 모았으니만큼, 특별히 아끼는 잡지도 있을 듯 하다. : 방금 꼽은 게임월드 창간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싸니까.


얼마였나. : 십만 원 넘게 줬다. 상태가 워낙 좋기도 했고, 창간호는 아무래도 희소성이 더 크다. 그 외에는 마이컴이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때 추억을 함께 한 잡지라서.

▲ 그가 가장 아낀다는 게임월드 창간호

▲ 창간호들은 그에게 특별한 기억을 준다고.

▲ 그 옛날임에도... 지금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뜻이 맞는 사람과 팀을 꾸릴 의향은 없는지. : 그게 참 애매하다. 이게 사명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덕짓이라서 말이지. 이런 걸 하는 사람들이 더 있기는 하다. 그런데 막상 팀을 꾸린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당장 돈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다들 생업이 바쁘다보니 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나와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본 건데, 어쨌든 팀이 꾸려지는 순간 자유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고,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러니까 지금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게임이 대박이 나서 한 1년 정도 놀아도 될 때가 온다면(웃음), 그 땐 팀을 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남아있는 게임 잡지는 딱 한 종류다. 거의 대부분 사라지거나 웹진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 웹진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이해는 되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PC 게임 시장이 살아 있었다면 게임 리뷰 같은 게 수요가 있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오프라인 잡지랑 궁합이 안 좋기도 하고.

뭐, PC 게임 쪽에 지금도 좋은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는 있지만, 잡지의 정제된 칼럼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챔프나 게임월드 보면, 편집장 칼럼이 꾸준히 게시됐다. 그런데 요즘 웹진들은 그런 칼럼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다.

같은 맥락으로, 현재 살아남은 게임 잡지가 끝까지 생명을 유지했으면 한다. 그런 종이로 된 공간이 최소한 하나라도 남아있는 게 좋다고 본다. 시장 변화에 따라 결국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럼 게임 잡지에서 특히 관심있게 보는 코너는 무엇이었나. : 난 주로 인터뷰를 봤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게임을 만들었는지 궁금했으니까. 만화든 소설이든 작품이 있지 않나. 게임에도 작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비노기를 예로 보면, 챕터 끝날 때마다 스텝롤이 쭈욱 올라간다.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게임성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 게임성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혹시 해외 잡지도 모으는지. : 내가 영어를 못해서... 뭐, 해외는 그 쪽 누군가 해주고 있겠지.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이 안가는 내용

▲ 이미 IT강국이 될 준비는 완료된 상태

▲ 애플2의 마이트 앤 매직2가 가장 인기있었을 때도 있었다


NDC2013 에서 한국 게임 역사에 대해 강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게임 역사의 황금기가 언제라고 생각하나. : 지금?(웃음) 아니 그게... 문화적으로 보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그 당시는 게임잡지가 남자들의 서브컬쳐 문화 통로가 됐거든. 게임 문화가 확 퍼지는 시기가 오게 된거다. 당시 저작권 개념이 지금처럼 세세하지 않아서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문화 말고 전체적인 규모 확장으로 보자면 2005년이라고 생각한다.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못 넘어오면 망하는 시기이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게임 만들어서 돈 버는 것 자체가 힘들었으니까. 또, 게임산업협회가 정식으로 등장한 때이기도 하고.

그리고 좀 다른 얘기로, 밸브의 스팀이 시장한 뒤 PC 게임 시장도 어느 정도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 중이다.


그럼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발된 게임 중 특히 인상깊게 본 작품이 있다면? : 망국전기 온라인. 이게 PC 패키지 게임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온라인으로도 개발된 적이 있었다. 중간에 제작이 중단돼서 안 알려졌을 뿐이지. 개인적으로 그렇게 사라진 게임에 더 관심이 간다. 특히 망국전기는 원작이 꽤 인기를 끌기도 했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한 번 복원에 도전하고 싶다.

▲ 그가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은 '망국전기'

▲ 슈퍼마리오도 공략을 피할 순 없다

▲ 아이들의 로망이었던 팩 꽂는 게임기


게임잡지 콜렉터로서 인터뷰하고는 있지만, 지금은 게임 개발자 아닌가. 개인적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을 것 같다. 이상향이라던가. : 흠... 뭐 하나를 딱 집어 말한기 어렵다. 그보단 여러가지 게임을 만들고 싶다에 가깝다. 옛날에 재밌게 했던 작품들의 게임성을 현대로 가져와보고도 싶고. 네오플에서 나오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것 저것 만들어보고 싶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회사에서 시키는 것을 잘 하는게 최우선이지만(웃음).

개인적으로는 격투 게임을 만들고 싶다. 사실 네오플에 입사 지원할 때 들고 간 포트폴리오도 격투게임이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격투 게임을 잘 못한다. 차라리 안 만드는 게 좋을지도(웃음). 어쨌든,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환경이 갖춰 진다 해도, 대규모 팀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인디 형식으로 혼자 만들거나 소규모 인원 데리고 가볍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오플 다닐 때는 업계 신입사원 아니었나. 여러가지 배우면서 느낀 것도 많았을 것 같다. : 당시 던전앤파이터 팀원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한 발자국 뒤에서 보면, 진짜 이 사람들이 천재구나 이런 느낌도 들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결국 최대한 많은 게임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게 답이라고 느껴졌다. 잡지 수집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어 고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음... 조금 민감한 이야기이긴 한데, 말해도 괜찮나.


괜찮다. 듣고 결정해도 되니까. : 어느 순간부터 유저와 개발사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거리감이 줄어들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내 생각에 일단 개발자는 말이 많아야 한다. 말실수를 하든 뭘 하든, 일단 말을 해야 유저와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 아닌가. 까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음이 좀 아프기는 하지만, 안 까면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둘이 가까워야 게임 문화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형성되고, 더욱 질 좋은 작품이 등장할 거다. 게이머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함께 문화를 이끌어 가는 거다. 좋게, 재미있게 말이지.

그리고 게임은 절대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여러 개발자들이 밤잠 줄여가며 만드는 게 게임이다. 전혀 생각치 못한 곳에서도 게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있다는 것도 한 번 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 이보다 더 괜찮은 컴퓨터가 없다! '갑일 컴퓨터'

▲ 요즘은 거의 공략을 보기 힘든 퍼즐 장르도 가차없다.

▲ 만화로 보는 컴퓨터 문화, 잡지 시절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