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도 정도가 있다. 출시 직후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파이널판타지14'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저에게 버림받은 MMORPG가 대형 업데이트 하나로 완벽하게 재기한 경우가 있을까?

2010년부터 '파이널판타지14'의 지휘봉을 잡은 나오키 요시다는 '파이널판타지14'의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래픽 엔진과 유저 인터페이스, 서버구조를 대폭 개선한 ‘렐름 리본’(Realm Reborn)이라는 개선판을 출시해 게임을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파이널판타지14'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0만 유저를 대상으로 서비스 중이며 서서히 예전의 이름값을 되찾고 있다.

나오키 요시다는 GDC 강연을 통해 '파이널판타지14'가 출시 후 부진의 늪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2년 8개월 동안 ‘렐름 리본’을 준비하면서 얻었던 실전 경험을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공유했다.

[▲'파이널판타지14'의 지휘봉을 잡은 나오키 요시다]

게임업계 19년 경력의 나오키 요시다는 2005년에 스퀘어에닉스에 입사, 드래곤 퀘스트10의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했다. 어렸을 때부터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의 팬보이였던 그는 '파이널판타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직업은 흑마법사,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파이널판타지' 3과 7이라고 밝혀 시작부터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파이널판타지14'의 최초 출시일은 2010년 8월 30일. 게임을 접한 유저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게임매체들의 평가도 심각했는데 메타크리틱 평점이 100점 만점에 불과 48점이었다. 하루에도 400번 다운이 될 정도로 서버 전체가 불안정했으며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했고 전투시스템은 엉망이었다. 인스턴스식 미로형 맵과 불편한 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한 불만도 가득했다. 특히, 스토리로 유명한 '파이널판타지'에서 제대로 된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왜 '파이널판타지14'는 실패했을까? 나오키 요시다는 전작의 성공이 화근이었다고 답했다. 개발진이 차기작의 압박에 굴복했고 구시대의 정책들을 끝까지 고수했다. 과거에도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괜찮지 않겠냐는 안이한 생각에 빠진 것. 특히 8년 만에 출시되는 차기작이 보니 변화해가는 MMORPG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그래픽 퀄리티도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 시대 유저들의 니즈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성공한 MMORPG의 차기작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입니다. '파이널판타지14' 초기버전, 캐릭터가 달려가는 장면에서의 화분 하나에 1,000개의 폴리곤과 150줄의 쉐이더 코드가 사용됐습니다. 이것은 캐릭터 하나를 표현하는데 들어간 리소스와 똑같은 양입니다.”

PS2 시절부터 스퀘어에닉스의 엔지니어들은 하드웨어의 한계를 짜내서 그래픽 퀄리티를 올리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콘솔과 PC 하드웨어의 성능이 일취월장한 새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 기술 도입에 실패했던 것이었다.

일본의 MMORPG 시장 상황도 '파이널판타지14'의 실패에 큰 영향을 끼쳤다. MMORPG 개발에는 거대한 규모의 개발팀이 필요한데 일본의 개발 환경은 점점 더 MMORPG에 어울리지 않는 쪽으로 변해갔다. 일본 게임회사들은 위험요소가 큰 MMORPG 개발을 꺼렸으며 MMORPG를 즐기는 유저 수도 점점 더 줄어들었다.


“'파이널판타지14' 실패의 내부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 퀄리티에 대한 이상한 강박관념이 첫째, 개발팀의 MMORPG에 대한 지식이 놀라울 정도로 적었던 것이 둘째, 추후 업데이트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이 셋째입니다.”

하지만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판타지14'를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접을 수는 없었다. '파이널판타지'를 사랑하는 전 세계 수많은 팬의 신임을 되찾기 위해 '파이널판타지14'를 끝까지 되살리기로 결정한 것. 그렇게 '파이널판타지14' ‘렐름 리본’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나오키 요시다는 새로운 디렉터 및 프로듀서로 전격 선임된다.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파이널판타지14'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플레이스테이션3의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가장 큰 과제는 기존 오리지널 버전의 업데이트와 게임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리지널 '파이널판타지14'가 구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작업해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어요.”

'파이널판타지14'의 서버시스템과 그래픽 엔진, 레벨과 콘텐츠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으면서 오리지널 '파이널타지14'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오키 요시다는 팀을 재편성하고 의사 결정 시스템부터 바꿔놓았다.


“윗사람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고 400개에 이르는 게임의 핵심기획은 제가 직접 결정했습니다. 혁신보다는 기본을 강조했습니다. 모든 기본적인 MMO 콘텐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구현되는 콘텐츠는 모두 직접 해보고 테스트했습니다.”

나오키 요시다는 모든 시스템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코딩을 금지했으며 본인이 선별한 팀원들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도록 했다. '파이널판타지14'의 기획팀에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겉보기보다는 게임플레이 경험과 기본적인 원칙을 강조했으며 다른 경쟁사의 MMORPG를 플레이하라고 지시했다. 개발자가 플레이한큼 배우는 것도 많아진다는 신조 때문이었다.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렐름 리본’의 새로운 기획 일부는 일부러 오리지널 서버에 적용했고 오리지널 서버는 비용은 절감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텐츠에 대한 테스트의 장이 되어주었다. ‘렐름 리본’의 콘셉과 기획은 미리미리 업데이트 전담팀에 공유해 주었다. 프로젝트 전체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레벨 디자인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일단 메인 스토리만 완성한 후 모든 계획이 잡힌 후에야 퀘스트 대량 생산을 하게 했습니다. 반복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든 맵은 모형을 만들고 테스트를 한 뒤 그 위에 덧붙여서 제작했습니다. 레벨 디자인팀은 지역별로 분리했습니다. 팀웍과 건전한 경쟁심을 고취하기 위해서였죠”

유저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에도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렐름 리본’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외부에 발표하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장장 9개월 동안 개발정보를 유저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했으며 동기 부여를 위해 내부 팀에도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나오키 요시다는 2년 8개월간 이 모든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에서 준비해 온 '파이널판타지14' ‘렐름 리본’의 비교 영상을 GDC 현장에서 재생했다. 오리지널 버전과 ‘렐름 리본’이 어떻게 다른지, 작은 것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청중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장면에서 나오키 요시다의 열정을 십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한 MMORPG를 만들기 위해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저는 업데이트의 용이성(Ease of Updating)이라고 봅니다. MMORPG에서 신경 써야 할 사항은 수없이 많습니다. 로그인 안정성, 서버 안정성,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제작시스템, 게임밸런스.. 아마 끝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하면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방대하고 오랫동안 서비스된 게임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애초 개발할 때부터 업데이트하기 쉽도록 구조를 짜서 최대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나오키 요시다는 MMORPG 개발자라면 자신에게 항상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밝혔다. 본인의 게임에서 할 수 없는 것을 경쟁 게임에서는 가능한지, 충분한 콘텐츠를 확보했는지, 유저 인터페이스에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 유저들을 위한 충분한 보상을 준비하고 있는지, 개발팀이 장기적인 업데이트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를 항상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절한 계획과 디자인이 바로 서 있을 때 비로소 혁신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나오키 요시다는 MMORPG의 운영을 한 국가의 운영과 비교해서 설명하며 청중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개발팀이 정부라면 유저들은 시민입니다. 당신의 정책이 시민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즉시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버립니다. 비전을 가지고 즐겁고 명확한 태도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이것이 배제된 정부라면 독재정권이나 마찬가지겠지요.”

“항상 의견을 듣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불평, 불만은 칭찬보다 두 배 더 가치가 있습니다. 불평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아직 정부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자가 그들이 창조한 세계에서 직접 유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리더가 그 나라에 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그 나라에 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