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중화 된 AOS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과 전략일 것이다. 여느 팀 게임이 다 그렇겠다만 유독 AOS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팀원들의 역할과 조합, 전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리그오브레전드의 탑-미드-정글-봇 듀오로 이뤄지는 조합이 그것이며, 도타 2의 3-1-1 체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전략과 조합은 초창기만 하더라도-물론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지만-비교적 자유로웠으나, 이제는 일정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것이 목적인 e스포츠 경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근 진행 중인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의 경우 사용 가능한 120여 개의 챔피언 중 실제 선택 혹은 금지되는 챔피언은 고작 30여 개에 불과하다.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참고하는 일반 유저들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랭크 게임에서의 챔피언 픽, 밴 통계 자료를 보면 대회에서 사용되는 30여 개의 챔피언 외에는 등장하는 비율이 고작 10%도 되지 않는다. 주로 사용되는 챔피언이 아닌 것을 선택하게 되면 팀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다. 결국, 게임사가 공들여 만든 챔피언 중 절반이 훨씬 넘는 수가 유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뻔한 조합의 반복은 곧 뻔한 경기가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지가 몇 없는 픽밴 상황에서는 이제 게임을 오래 즐긴 유저라면 쉽게 조합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선수들 역시 특정 챔피언만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또 상대하기 때문에 팀 단위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기보다는 숙련도와 개개인의 센스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펼치게 된다. 물론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플레이는 예전보다 더욱 화려해졌지만, 큰 그림을 그려 놓고 풀어가는 두뇌 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 다른 대회, 다른 팀의 경기지만 등장하는 챔피언만큼은 변함이 없다


굳어진 조합은 식스맨 체제의 실패로도 이어졌다. 예비 선수들마다 준비된 한 방 혹은 의외의 전략을 풀어낼 수 있었다면 식스맨의 시도 자체는 분명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바뀌더라도 조합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5명이 함께 호흡을 맞춘 시간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식스맨 체제는 그렇지 않은 팀에게 밀리고 말았다. 현재 리그오브레전드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SK텔레콤 T1 K가 다른 팀을 압도하는 배경에는 5명이 고정되어 연습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일조했을 것이다.

대회에서 정형화 된 조합과 전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프로게이머 혹은 팀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프로라면 당연히 경기에서 승리하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야 한다. 그렇다 보니 참신한 전략을 시도하는 위험 부담을 안기보다는 익숙한 조합으로 안정적인 게임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그들이 선택하는 챔피언과 조합은 현재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것들이다. 다른 챔피언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능력치를 보유한 만큼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팀의 노력만큼이나 개발사와 대회 주최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왜 선수들이 정형화 된 조합을 사용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수 많은 선택지를 보유한, 그것이 장점인 AOS 게임에서 특색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개발사 측에서는 특정 챔피언으로의 쏠림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선수나 팀의 기호나 색깔이 배제된 채 다른 것보다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챔피언이 반복 선택되는 것은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챔피언에는 마땅한 카운터가 존재하지 않아 대응책 역시 쉽사리 마련되지 않고 있다. 특히, 능력치의 수치 조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진 챔피언들이 여럿 존재한다. 비슷한 형태의 스킬을 보유한 챔피언은 자연스레 어느 하나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감히 메스를 들어 리메이크 형태의 밸런스 패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 최근 이뤄진 '리메이크'를 통해 입장이 정반대가 된 두 챔피언


주최측 역시 보다 역동적인 경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실제 스포츠 경기를 보면 스포츠맨쉽과는 별개로 보다 더 흥미진진한 경기를 만들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농구의 경우 24초 룰을 통해 빠른 전개를 유도함과 동시에 3초 룰로 손쉽게 득점을 올리는 것을 금하고 있다. 축구의 오프사이드 규정 역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경기를 막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장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스포츠의 핵심이 선수나 관계자가 아닌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기 때문이다.

AOS 리그에도 위와 같은 시청자를 위한 규정이 필요하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외부의 개입이 불가능한, 그리고 불필요한 e스포츠 특성을 고려한다면 밴픽 단계에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일례로 한 번 선택한 캐릭터를 그 다음 세트, 혹은 그 다음 경기에서 연달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선수들과 팀은 자연스레 새로운 조합과 전략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식스맨 체제 역시 경기 시작전에 출전 선수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밴픽이 끝난 후에 출전 선수가 정해진다면 보다 유동적인 플레이도 가능해질 것이다.

2013년 NLB 결승전에서 당시로서는 아마추어였던 GSG가 꺼내든 4미드 전략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단순히 아마추어의 패기가 아닌 준비한 각본대로 밴픽을 주도하고, 자신들의 전략을 적중시키는 모습은 당시 정형화 된 전략만 반복하던 e스포츠판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난 23일 진행된 국내 도타 2 대회인 KDL 시즌 1 티어 2리그에서도 흥미로운 전략이 나왔다. 5 오라 조합을 꺼내든 네미시스는 1렙 로샨을 시도한 직후 압도적인 푸쉬력을 바탕으로 상대가 준비한 전략을 무너뜨리며 승리를 차지했다. 물론, 위의 두 사례는 이후에는 쉽게 통하지 않을 필살기와 같은 전략이지만, AOS 게임에 있어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엔 충분했다.

최근 대회를 보다보면 언제부턴가 밴픽 단계에서 관중의 환호성이 들리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관중들은 어떤 챔피언과 조합이 등장할 지 기대하지 않게 됐다. 어떤 선수가 나오더라도 결국 그들이 택할 챔피언은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승리를 위해 강요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진행된 롤 마스터즈 클래식 매치에 출전한 선수들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밴픽 단계에서부터 숨 죽이며 경기를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블리츠크랭크, 럭스 등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경기의 재미를 보장하는 선수들마다 차별화 된 스타성은 이젠 그들처럼 지나간 과거가 됐을 뿐이다. 단순히 승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팬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도 중요한 e스포츠를 위해 선수와 개발사, 주최측이 모두 노력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