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물건의 바코드를 읽으면 그 물건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어. 바코드를 읽으면 나만의 왕국을 지키고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용사뿐만 아니라 무기와 포션도 생성할 수 있어. 어때? 엄청나게 참신하고 신선하고 새로운 능력이지?

요즘 다 똑같은 녀석들만 등장하잖아. 액션성을 강조한 자동전투 RPG들. 나 역시 자동전투를 채용했지만 난 근본적으로 그들과 달라. 난 플레이어 스스로 바코드를 찍어서 오브젝트를 만들어. 나에게 빠져든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모든 바코드에 신경을 쓰며 다니지. 심지어는 높은 단계의 유닛을 얻을 수 있는 바코드를 공유하는 곳도 생겼으니 말이야.

사실 난 수려한 그래픽도 가지지도 못했고 박력 있는 사운드를 지니고 있지도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에게 열광하지. 참신한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지. 그렇다고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지는 않아. 어때 내가 누군지 궁금해지지? 그런 의미로 부끄럽지만 내 일기장을 공개할게.

3월 말에 태어난 이후 이례적으로 해외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에 대해 한꺼풀 한꺼풀 벗겨봐. 참 내가 누구냐고? 난 '바코드 킹덤'이야.





[2014년 4월 5일 날씨 맑음]
제목: 책을 읽으면 마음의 양식이오, 바코드를 읽으면 킹덤을 가질 것이니

오늘은 식목일이다.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출근을 했다. 타고난 능력을 사용해 나만의 왕국에 들어갈 바코드를 읽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에 난 편의점을 선택했다. 내가 내세울 것은 바코드를 찍어 용사와 무기, 포션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능력이야말로 참신의 극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편의점엔 온갖 손님이 온다. 그중 가장 힘든 사람은 취객이다. 흡사 저 레벨 존에 나타나는 필드 레이드 보스 같은 포스를 풍긴다. 그런 취객이 내 앞에 나타나 바닥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다. 내가 공들여 닦아놓은 바닥에. 드디어 나의 왕국 기사단을 출동시킬 때가 온 것이다.


▲ 내 바코드는 편의점 진열대를 뚫을 바코드다!! 용사 소환!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에 바코드 스캐너를 가져갔다. 잠시 후 물건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운좋게도 이번 녀석은 RARE 단계의 베테랑 메지션 'halical'이었다. 각종 공격마법을 사용해 막강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용사다.

취객을 상대하기 위해서 좀 더 강한 용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바코드를 읽을 때마다 정신력(AP)이 소모되기 때문에 그냥 이 녀석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4명이 한 파티니까 서로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출격시켜 취객에 맞서 싸우게 하려면 새로운 무기를 필요하다. 다시금 5의 AP를 소모해 근처 물건의 바코드를 읽었다. 잠시 후 바코드 스캐너의 뜨거운 눈빛을 받은 물건은 나에게 갑옷으로 응답했다. 방어력과 체력을 올려주는 고급의 아이템이다. 베테랑 메지션에게 갑옷을 장착시키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너의 바코드는 이제 없어! 그러나... 나의 아이패드 속에서 함께 살아가!


용사들이 공격하기 위해 목표까지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이 걸린다. 통상적으로 용사들이 모여있는 성에서 적이 있는 곳의 거리에 따라 시간이 결정되지만, AP를 소모해 적의 바로 앞에 포탈을 생성할 수도 있다. 취객의 빠른 제거를 위해 난 포탈을 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나타났다. 아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겠지. 그들은 자신의 리더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역시 사람은 사회성(Social)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역시 소셜 요소는 요즘의 경향인듯하다. 친구와 함께라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 게임센터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드디어 적과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4명으로 편성된 나의 용감한 용사들은 적을 향해 돌격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의 전투를 옆에서 응원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루할 것 같다고? 아니다. 아기자기한 용사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의외로 재미있다.

나의 용사들은 필살기를 사용하거나 마법을 사용한다. 반대로 "힘들어", "미안해"라며 공격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용사들을 보며 "힘을 내!"라며 응원을 하거나 "제대로 해!"라고 타박을 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취객은 우리 용사들이 상대하기에는 쉽지 않은 녀석이었나 보다. 취객의 막걸리 브레스를 맞은 용사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내가 출동해야 한다. 비틀거리는 용사들을 위해 포션을 사용해야 한다. 포션 역시 바코드를 읽어서 생성시켜야 한다. AP를 소모해서 만든 포션이지만 나의 용사들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용할 용의가 있다. 어차피 AP는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회복되니까. 또한, AP포션을 이용하면 회복시킬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눈앞에 적을 무찌르는 것이다.


▲ 나의 용사를 건드리지마라. 언제 흑염룡이 날뛸지 모르니 크큭


포션을 마신 용사들이 드디어 막걸리 브레스를 돌파해서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취객은 돈을 내놓고 총총 사라져갔다. 이로써 하나의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챕터가 계속 될 것이다. 챕터2, 챕터3, 챕터4... 챕터를 클리어할수록 새로운 요소가 나의 왕국에 자리 잡을 것이다. 콜로세움과 시간의 사원 등을 비롯한 건물들 말이다.


어때? 조금은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거라 믿어. 나에겐 물건의 바코드를 용사와 무기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 이것만 알아도 나에 대해 거의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모든 사람이 나를 호기심 깃든 눈으로 쳐다보는 이유도, 다른 친구들보다 앱스토어 순위 상위권에 올라가 있는 이유야. 바로 참신함이지. 수백 번을 강조해도 참신함이란 단어 말고는 나를 표현할 더 좋은 단어는 없어.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그럼 다음 일기도 읽어봐.


[2014년 4월 8일 날씨 흐림]
제목: 소환사의 협곡을 기다려주는 여자는 있어도 왕국의 발전을 기다리는 적군은 없다.


누군가 나의 왕국에 침공했다. 아뿔싸. 나의 성에는 단 한명의 용사만이 수비를 위해 남겨져 있을 뿐이다. 반면 상대는 강력한 기사단을 동반하고 나의 성을 짓밟았다. 성을 지키기 위해서 평소에도 바코드를 신경 써 읽어둘 걸 이라며 후회했다. 더불어 강력한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난 왕국의 광산으로 갔다. 광산에서 채취하는 돌을 이용하면 무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무기를 지닌 용사가 날 위해 싸워준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흥분되었다. 광산에 도착해서 별다른 이벤트 없이 무작위로 돌을 얻었다. 이것은 나만의 특징이다. 절제된 표현과 연출말이다.

용사들이 적을 무찔러 얻어온 돈으로 왕국의 성을 업그레이드했다. 성을 업그레이드하면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이 늘어나 왕국의 곳간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 참. 일전에 취객과 싸운 우리 용사들은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했다. 레벨업을 하려면 경험치뿐만 아니라 일정량의 골드가 필요한데 골드는 전투와 세금을 통해 얻을 수 있다.

▲ 소재를 얻어 무기를 업그레이드하자


다음은 슬라임 타워로 향했다. 슬라임 타워에서는 보상으로 펫을 얻을 수 있으나 5번에 걸쳐 밀려드는 슬라임들을 처치해야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 패배하면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야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펫은 귀여울 뿐만 아니라 함께 전장을 누빔으로써 나의 기사단을 더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펫도 용사처럼 강화를 통해 강력해진다. 펫의 종류는 100여 가지에 달해서 모으는 재미도 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적이 성을 침공해오는 일이 있었지만, 전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격퇴했다. 이젠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을 침공해 골드를 얻을 것이다.

다른 왕국을 침공하기 전 내 왕국의 곳곳을 둘러봐야 한다. 데일리 미션과 팀워크 훈련 등 나의 용사들을 강력하게 성장시킬 곳과 골드를 획득할 곳 말이다. 왕국이 강해지자 내가 운영할 수 있는 기사단은 늘어났다. 이제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 난이도를 보고 선택할 수 있다



내 눈엔 너만 보여♡

일기를 읽다 보니 벌써 마감 시간이다. 평소라면 아늑해야 할 이 시간에 초딩몬이 출현해서 뽀로로를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런 답도 없는 녀석들에게는 나의 왕국 기사단이 철퇴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포탈을 통해 용감하게 돌진한 나의 기사단은 순식간에 전멸당했다. +2 갑옷을 입고 있어도 +3 무기를 들고 있어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평소에 바코드를 꾸준히 읽어 더 좋은 무기와 용사를 얻는데 게을렀던 나의 완벽한 패배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수 많은 바코드를 읽기 시작했다. AP가 모자라면 포션을 마시고 또 마셨다. 온 매장을 돌아다니며 좋은 용사와 무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바코드 킹덤'에서의 최고 가치는 바코드를 찍는 것이다.


▲ 상점과 프리미엄 상점을 통해 더 강력 해질 수 있다.


"아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아아 내가 그의 바코드를 읽어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난 오늘도 고독한 싸움 중이다. 밀려드는 물건의 바코드를 읽으며 나만의 왕국을 꾸려나간다. 강해지는 기사단과 커지는 성을 보며 흐뭇해하는 나에겐, 눈을 돌릴 때마다 물건의 바코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트랜스포머를 보고 난 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이 실제로 변하지 않을까 하며 상상하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바코드를 찍어 용사와 아이템을 얻는 신선함과 신기함으로 중무장한 나는 '바코드 킹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