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이지만 아직까지 종목(혹은 장르)의 다변화적인 측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공인 종목을 제외하면 사실상 불모지와도 다름없다. 방송사와 기업의 관심을 받지 못한 종목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지기 일쑤다.

격투 게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로 대표되는 격투 게임은 어릴 적 오락실을 종종 다녔던 2, 30대에게는 향수를 일으키는 게임이다. 기자 역시 오락기 앞에 앉아 기술표를 힐끗거리며 열심히 실력을 연마했고, 잘하는 친구를 졸라 콤보 하나 배우고자 부던히 노력했다.

특히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철권은 MBC 게임에서 '테켄 크래쉬'란 리그로 흥행 몰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MBC 게임의 폐국과 함께 철권 리그의 인기는 한 풀 꺾였고, PC방에게 자리를 내준 오락실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격투 게임은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듯 척박한 상황에서 소수의 격투게임 마니아들은 더욱 똘똘 뭉쳤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주고받고 친목을 다졌다. 하지만 격투 게임을 향한 열정과 애정은 단순한 친목 다지기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다.

카페이드의 김대환 매니저 역시 이러한 갈증을 느꼈다. 예전부터 격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같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없어졌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뭉쳐 격투 게이머들을 위한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카페이드를 만들었다. 첫 발걸음은 2011년 3월 홍대였다. 28평 남짓한 공간이었지만, 카페 같은 분위기로 자유롭게 휴식과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방송도 가능했다.

▲ 국내 격투 게이머 단체 카페이드의 김대환 매니저


"처음 시작은 홍대였어요. 친구들과 같이 3명으로 시작했는데 개인 사정때문에 함께 하던 2명이 빠졌어요. 저도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이왕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힘들 때가 되기 전까지는 해보자는 생각에 지금까지 죽 하게 됐죠. 그렇게 혼자 오래 운영을 하다 보니 한 친구는 다시 돌아왔어요. 혼자서는 계속 못 했을텐데 큰 힘이 됐죠. 인생이 곡선같이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 때 밀리온즈(MILLIONZ) 라는 친구가 다시 복귀하면서 지원을 해 줬어요. 조금씩 개인 사정이 나아지자 다시 자신의 열정을 따라 돌아온거죠."

카페이드는 점차 격투 게이머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같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서 게임을 하게 됐고, 자연스레 자신들의 객관적인 실력이 궁금해졌다. 기왕 시작한 김에 자신들끼리 즐기기보다는 대회에 출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미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격투 게임 대회에 참가했고,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국내 마니아들의 모임이었던 카페이드가 외국 격투 게이머들에게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저는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됐어요. 대회 출전하는 선수들 스케줄도 짜고, 비행기표와 숙소를 잡고, 협찬이나 스폰서도 직접 구했죠. 사실 마땅히 할 사람도 없었고요. 플레이어는 플레이만 하고 싶어하잖아요. 반면 저는 제가 우승할 재목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입상을 할 수준은 되지만 우승권을 노릴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팀 운영에서 최고가 되어 보자고 생각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 같아요."

▲ EVO 2012 당시 KOF 13부문 우승을 거둔 '동네형' 이광노

이후 카페이드는 2013년 4월 지금의 자리로 둥지를 옮겼다. 콘솔, 아케이드 등 다양한 장비를 갖춘 카페이드는 이제 격투 게이머들에게는 '성지'로 불리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마련된 곳이기도 하지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끌렸다.

카페이드의 운영은 대부분 김대환 매니저의 사비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문객에게 하루 기준 만 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청소비 명목일 뿐이다. 이마저도 청소년은 무료이며, 딱히 시간을 지키는지 관리하고 있진 않다.

"회비 같은 개념이에요. 하루 만원을 받고 내부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무료라고 하면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안 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작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회비를 받게 됐어요. 수익보다는 물건을 청소한다던지, 운영비 같은 부분에 보태고 있어요. 물론, 이용자들이 내는 돈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좋아하시더라고요.

24시간 운영이지만 따로 시간을 체크하거나 관리하고 있진 않아요. 한 번씩 비품이 없어진 경우도 있긴 하지만 한, 두명 때문에 여러 명이 불편해지는 건 싫거든요. 그저 출입이 편한 자기 집처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공간으로 남고 싶어요. 따로 홈페이지가 없는 것도 관심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맛집이나 유명한 곳은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들잖아요. 카페이드 역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외국 친구들도 신기하게 어떻게 알고 찾아오더라고요. 이제는 없어지면 안 되는 공간이 됐죠."




처음에는 좋아서 취미로 시작했던 카페이드는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격투 게임 단체로 성장했다. 실력을 인정한 외국에서는 대회를 개최할 때마다 카페이드의 참가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책임감과 부담도 커졌다. 무엇보다 뚜렷한 수입원이 없다는 것은 분명 아쉬울 법 했다.

"그래도 취미니깐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돈을 투자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지 않잖아요. 오히려 카페이드에 돈을 쓰기 위해 더 알뜰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튜닝 같은 경우에는 수백만원씩도 깨지거든요. 게다가 차는 혼자 좋아하고 즐기는 취미고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좋아해요. 그래서 적자가 나더라도 운영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또한 해외 리그에 진출하고 싶은 선수들이 있고, 저도 그들의 경기와 결실이 궁금해서 투자를 하는 거고요. 아직 한국에는 후원 문화가 정착하진 않았지만, 해외 유저들 중에는 작게나마 후원을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게이머들의 단체였던 카페이드는 2012년도부터 소규모 대회를 열며 주최사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한국 선수들이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는 그들을 위한 대회가 없는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다. 외국 선수들과 팬들 역시 실력자가 많은 한국에선 정작 대회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렇게 2012년 EVO 예선전의 개념으로 대회를 열었고, 우승자를 비롯해 일부 선수들에게는 본선 참가비를 지원했다. 또한 2013년도 WCG 스트리트파이터 한국대표선발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차츰 경험이 쌓이자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는 카페이드가 중심이 되어 큰 규모로 대회를 열고자하는 욕심도 생겼다. 그런 참에 반다이남코에서 대회 주최 가능성 여부를 묻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일본 내에서 대회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반다이남코는 타국가를 물색하던 중 철권 강대국인 한국에 주목했다. 게다가 여러 대회에서 그 실력을 입증한 바 있는 카페이드의 행보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반다이남코는 카페이드가 글로벌 대회를 주최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작년 10월 26일, 카페이드는 하얏트 리젠시 인천 호텔에서 첫 글로벌 대회인 '철권 태그 토너먼트 2 세계대회'
를 열었다. 세계 13개국에서 모인 선수들의 경기를 5만 명의 팬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한국의 '세인트' 최진우가 우승을 거두며 철권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몇 몇 문제가 발생하긴 했지만, 제법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 하얏트 리젠시 인천 호텔에서 열린 철권 태그 토너먼트 2 세계대회 현장

"한번은 글로벌 대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도 부담이 상당했죠. 결정을 쉽게 못 내리고 있던 중에 밀리온즈가 큰 후원을 해줘서 진행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처음이다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어요. 알고 보면 단순한 문젠데 아무도 확인을 못한 거죠. 항상 대회는 문제가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결국 조금 더 빨리 수정하고 진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봐요. 그래도 함께 진행한 일본 측에서는 24시간의 방송 분량 중에서 2시간 가량의 문제로 당황하면 안된다고 용기를 주더군요."

철권 태그 토너먼트 2 세계대회를 마무리한 김대환 매니저는 이미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특정 게임의 이벤트 매치가 아닌 격투 게임의 정식 글로벌 대회를 국내 무대에 만들고 싶었다. 철권의 경우 국내에서는 인기가 높지만 세계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않는 만큼 스트리트파이터와 킹오브파이터즈 등의 인기 종목으로 전 세계 일류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그 계획이었다.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대회다 보니 비용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다행히 카페이드의 뜻을 높이 산 게임사와 콘솔 업체에서 지원을 했고, 팬들의 후원도 있었다. 대회 홍보를 위한 트레일러 영상 역시 김대환 매니저의 작품이다. 지인들과 함께 만든 트레일러는 왠만한 대회 영상보다 뛰어난 퀄리티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이드 글로벌 토너먼트 2014 공식 트레일러 영상

이런 노력을 알아 준 국내외 유명 격투 게이머들은 흔쾌히 대회 참가의 뜻을 밝혔다. 참가비와 항공비, 숙박비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했지만, 뜻을 함께 하기 위한 이들의 발길을 막을 순 없었다. 모로코나 프랑스, 미국에서는 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선수를 위한 모금활동까지 진행됐다.

그렇게 지난 달 29일 제주도에서 진행된 '이드 글로벌 토너먼트 2014'는 이제는 사라진 투극을 대체할 규모의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 많은 네임드들이 대거 참여했고, 1박 2일 동안 150만 여명의 팬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대회를 지켜봤다. 100%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분명 의미있는 결과였다.

"동시 시청자 수가 최대 3만 5천명 까지 나왔어요. 기대치보다는 조금 낮았죠. 시차나 대회가 열리는 지역 유저들의 참여도가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칠줄 몰랐어요. 일반적으로 이런 대회가 열리면 지역 유저들이 8, 네임드 선수가 2 정도의 비율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대회는 네임드 선수들이 7이고, 일반 유저는 3 정도의 비율이었어요. 완전 뒤바뀐 거죠. 하지만 참가자 리스트는 만족해요. 선수들의 질로 따진다면 역대 대회중 3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해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거든요. 이렇게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모였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외면 받은게 아쉽긴 하지만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무형의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인색한 건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외국 선수들의 인지도가 아직 한국 유저사이에서는 낮게 평가되고요. 또 게임 대회에 참가비를 지불한다는 것 자체도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것 같아요. 외국 팬들은 30시간 이상의 거리도 마다않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 참가하거든요. 그들은 그 돈으로 유명 선수들을 직접 만나고, 얘기하고, 같이 게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거죠.

이번 대회가 끝은 아니에요. 최소 3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 대회는 무조건 손해본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서 만족스럽네요. 이번 대회가 발판이 되서 2회 대회 때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오고, 3회 때 자리잡는 방식이 되길 원해요. 무엇보다 절 믿고 와준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큰 짐을 내려놓은 김대환 매니저는 서울에서 다시금 대회를 개최하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미 콘솔사와 긍정적인 얘기도 오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마추어 주최사로 한국 격투 게임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다.



"격투게임은 어려운 게임이에요. 그러다 보니 격투게임 유저들끼리는 끈끈한 정이 있어요. 외국 대회에 나가면 서로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죠. 특히 외국 유저들은 한국 유저를 부러워하고, 존중해주고 있어요. 그런 만큼 국내 유저들끼리 더욱 잘 뭉쳤으면 좋겠어요. 특히 격투 게임은 종류가 다양하고, 버전이 많다보니 기존 유저들이 신작에 대해 배타적인 면을 보일 때가 있거든요. 그런 감정은 배제했으면 좋겠어요.

간혹 본인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에 나가면 전혀 나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나이가 있는데 격투게임 하는게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오히려 나이를 먹었으니 게임을 하면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가 바뀌면서 자신이 격투 게임을 한다고 얘기를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롤은 다이아나 플래티넘이라고 자랑하지만, 킹오파, 스트리트파이터에서 자기 실력이 어느정도라고 쉽게 얘기를 못하잖아요. 내가 하고 있는 격투 게임을 자신있게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응원과 도움이 필요하죠."